부다페스트 여행 (물가, 멘자, 야경)

5년 전 케밥 한 개에 800포린트였던 부다페스트가 지금은 2,200포린트입니다. 처음 가격표를 봤을 때 숫자를 잘못 읽은 줄 알았습니다. 분명 5년전에 기억하던 "저렴한 동유럽"을 기대하고 왔다가 한국보다 비싼 김치찌개 3만 원짜리 메뉴판 앞에서 멍하니 서 있었습니다.


부다페스트 물가, 지금은 서유럽이랑 다를 게 없습니다

제가 5년 전 가계부를 뒤져보니 당시 공항버스 112번이 900포린트였습니다. 지금은 2,200포린트입니다. 케밥도 800포린트에서 2,200포린트가 됐습니다. 단순히 환율 차이만으로는 설명이 안 됩니다. 실제로 찾아보니 코로나 이후인 2020년부터 헝가리의 연평균 인플레이션이 약 15% 수준으로 지속됐고, 결과적으로 5년 전 대비 약 175% 비싸진 상황입니다. 문제는 물가만 올랐다는 점입니다. 제가 아는 현지 학교 선생님 월급이 130만 원이 안 됩니다. 소득은 그대로인데 물가만 튀어버린 구조입니다. 헝가리 GDP가 약 50위권, 1인당 GDP는 약 13,000달러 수준의 나라인데 장바구니 물가는 이미 서유럽 따라잡았습니다. 제가 가장 충격받은 건 한식당이었습니다. 김치찌개에 공기밥 추가하고 15% 서비스 차지까지 붙으면 3만 원이 훌쩍 넘었습니다. 육회비빔밥은 35,000원, 짬뽕도 3만 원 수준입니다. "그래도 한식 한 번 먹어야지" 하고 들어갔다가 나올 때 후회막심해지니 쉽게 생각하고 접근해서는 안되겠더라구요. 그렇다고 아예 먹을 데가 없는 건 아닙니다. 길거리 침니 케이크(굴뚝빵)는 설탕이 잔뜩 발라져 있어서 맛이 없을 수가 없는 간식이고, 다뉴브강 근처 레스토랑에서 굴라쉬 9유로, 마가리타 피자 10유로 정도면 위치 대비 나쁘지 않은 편입니다. 여기서 굴라쉬란 헝가리 원조 전통 스프로, 감자와 당근, 수제비 같은 면이 들어간 칼칼하고 따뜻한 국물 요리입니다. 폴란드나 체코에서도 먹을 수 있지만 헝가리가 원조라는 데는 이견이 거의 없습니다. 오스만 제국의 영향으로 동유럽 전역에 퍼졌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 공항버스 112번: 공항에서 시내 진입 기본 수단. 비행기 도착 시 숙소를 이 버스 노선 근처로 잡으면 동선이 편합니다.
  • 교통 앱 '부다페스트고': 버스·트램 탑승권을 앱에서 바로 구매 가능. 1회권 450포린트, 1일권 2,500포린트. 하루 2~3번 타는 수준이면 1회권이 훨씬 낫습니다.
  • QR코드 필수 스캔: 표를 샀더라도 탑승 시 QR을 찍지 않으면 무임승차로 간주됩니다. 벌금이 정상 요금의 10배입니다. 저도 한 번 냈습니다.
  • 스타벅스 다뉴브강 지점: 콜드브루 톨사이즈 1,450포린트(약 5,500원). 화장실 무료에 뷰가 죽여줍니다.
요약: 부다페스트는 더 이상 저렴한 동유럽이 아닙니다. 5년 새 물가 175% 상승, 지금은 한국보다 비싼 항목도 많습니다.

멘자 식당, 부다페스트에서 유일하게 가성비가 살아있는 곳

물가가 이렇게 오른 마당에 제대로 된 한 끼를 합리적으로 먹고 싶다면 선택지는 사실 많지 않습니다. 그나마 제가 찾은 답이 멘자였습니다. 여기서 멘자란 부다페스트 현지인들 사이에서도 유명한 런치 코스 식당으로, 평일 점심에만 운영하는 가성비 세트 메뉴로 이름을 알린 곳입니다.

2가지 코스가 나오는 런치 세트가 3,000포린트, 3가지 코스가 3,500포린트입니다. 지금 부다페스트 물가 기준으로 이 가격에 코스 요리를 먹을 수 있는 곳은 사실상 여기밖에 없다고 봐도 됩니다. 다만 문제가 있습니다. 평일인데도 한 시간을 기다려도 못 들어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약은 전화로만 됩니다. 앱도 없고, 온라인 예약도 없습니다. 전화 예약 안 하고 가면 그냥 발길을 돌려야 합니다.

제가 갔을 때 식당 분위기가 중세시대 느낌이랑 비슷하다고 할까요, 꽤 예뻤습니다. 메뉴판은 헝가리어로만 빼곡하게 적혀 있어서 사진을 미리 찍어 가거나 구글 번역 준비를 해 두는 게 좋습니다. 저는 굴라쉬와 파프리카 치킨을 먹었는데, 굴라쉬는 약간 칼칼한 맛이 있으면서 한국인 입맛에 딱 맞는 구석이 있었습니다. 테이블 위에 고추장처럼 생긴 빨간 소스가 있어서 잼인 줄 알고 그냥 한 입 먹었다가 매운맛에 호되게 당했습니다. 유럽사람들한테 불닭볶음면이 잘팔리는 이유도 다 그들에게 익숙한 매운 맛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 순간이었습니다. 

이 식당에 대해 한국인 인종차별 피해 글이 꽤 많습니다. 제가 직접 가서 보니 사장님이 모두에게 공평하게 무뚝뚝한 스타일이었습니다. 동양인만 한쪽에 몰아놨다는 얘기도 있는데, 영어를 잘 하는 직원이 따로 구역을 담당하는 구조라 그렇게 보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유럽에 오면 백인 모두가 예의 바르고 완벽할 거라는 기대 자체가 좀 과한 것 같습니다. 동남아에서는 주문 누락이 있어도 "실수였구나" 하고 넘어가면서, 유럽에서는 사소한 무뚝뚝함을 인종차별로 해석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냥 기대를 안하면 실망도 안하니 이런저런 태도에 관심을 줄이고 맛있는 밥에 집중하면 여행이 더 즐거울 거라고 생각합니다.

요약: 멘자는 부다페스트에서 현재 가성비 있는 코스 요리를 먹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선택지. 전화 예약 필수입니다.

야경 스팟 3곳, 동선과 체력 배분이 관건입니다

부다페스트를 파리, 프라하와 함께 유럽 3대 야경 도시로 꼽는 이유가 있습니다. 직접 보면 압니다. 낮에 봤을 때도 예쁜데, 밤이 되면 완전히 다른 도시가 됩니다. 여기서 야경 스팟이란 단순히 전망 좋은 장소가 아니라, 각각의 위치에서 보이는 구도 자체가 다른 그림을 보여주는 지점들을 말합니다.

스팟은 세 곳입니다. 부다성, 어부의 요새, 국회의사당 맞은편. 동선은 이 순서대로 가는 게 효율적입니다. 페스트 지역 숙소에서 세체니 다리를 걸어서 건너면 부다 지역입니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왼쪽에 부다성, 오른쪽에 올라가는 계단이 보입니다. 오른쪽으로 올라가는 게 동선을 아끼기에 좋습니다. 푸니쿨라라는 엘리베이터가 있긴 한데 왕복 4,000포린트(약 15,000원)입니다. 걸어가도 충분합니다. 

부다성에서 마차슈 성당 방향으로 10~15분 걸으면 어부의 요새가 나옵니다. 어부의 요새 창틀에 기대어 반대편 국회의사당을 찍는 구도가 진짜입니다. 인생샷 스팟이라는 게 과장이 아닙니다. 거의 매일 한국인 야경 투어팀이 오는 곳이라, 그 분들 구도 따라 찍으면 됩니다. 어부의 요새 밑으로 내려와서 왼쪽으로 15분 정도 걸으면 국회의사당 맞은편 스팟입니다.

한 가지 주의할 점은 체력입니다. 낮에 이 코스를 한 번 돌면 18,000보가 나옵니다. 야경이 하이라이트이기 때문에 낮에 한 번 돌고 쉬고, 저녁에 다시 나가는 루틴이 현실적입니다. 지도에서 보면 걸을 만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생각보다 많이 멉니다. 중간중간 트램이나 버스를 섞어 타는 게 좋습니다. 야간에도 치안은 좋은 편이라 혼자 다녀도 크게 불안하지 않지만, 사진을 찍으려면 동행이 있는 편이 훨씬 낫습니다. (출처: We Love Budapest 부다페스트 관광 정보)

요약: 야경 스팟은 부다성→어부의 요새→국회의사당 순서로. 낮과 밤 두 번 나눠 움직이는 체력 배분이 핵심입니다.

5년 만에 다시 찾은 부다페스트는 야경도 여전히 아름답고, 치안도 여전히 좋고, 사람들도 여전히 나쁘지 않았습니다. 달라진 건 가격표뿐입니다. "동유럽이라 저렴하다"는 전제를 버리고 가면 충분히 즐길 수 있는 도시입니다. 다만 그 전제를 버리지 못하고 가면 식당마다, 카페마다 실망하게 됩니다. 멘자 런치 세트 하나 예약해 두고, 야경 스팟 동선 짜서 체력 안배하면서, QR코드 꼭 찍는 것 잊지 마시고요. 부다페스트 야경은 진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