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로미티 케이블카 완전정복 (슈퍼패스, 세체다, 사소롱고)

이번 이탈리아 여행에서 가장 웃겼던 순간을 꼽으라면 모두 입을모아 이 때를 말합니다. 돌로미티에 도착해서 네비게이션이 "400m 앞에서 '살짝' 좌회전입니다"라고 했을 때, 옆에서 "살짝 좌회전이요?"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같이간 일행 전부 다 웃음이 터졌습니다. 그렇게 웃으면서 시작한 여행인데, 일주일이 지난 지금 돌아보면 그 말이 정확했습니다. 돌로미티는 지금까지 살아온 나의 정신세계를 흔들어놓는 곳입니다. 좋은 의미로요.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케이블카를 50번 탔고, 총 이동 거리는 약 10km. 이게 무슨 의미인지 경험하고 싶다면, 계속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슈퍼패스 하나로 50번 탄 케이블카, 실제 동선과 수치

돌로미티 슈퍼패스는 돌로미티 지역 전체의 곤돌라와 케이블카를 기간권 하나로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 통합 패스입니다. 여기서 슈퍼패스란, 특정 구간 한정이 아니라 돌로미티 광역 리조트 전역에 걸친 케이블카와 리프트를 하나의 카드로 이용할 수 있는 교통·관광 통합권입니다. 보통 3일권이나 5일권으로 결제하며, 저희는 마지막 날 앱으로 사용 기록을 조회했더니 총 50회 탑승, 약 10km 이동이 찍혀 있었습니다. 개별로 구매했으면 금액이 얼마나 나왔을지 생각만 해도 아찔합니다.

첫날 동선을 예로 들면, RPD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세체다 케이블카가 있는 오르티세이 마을까지 걸어서 약 10분 이동한 뒤, 케이블카 두 번으로 세체다 정상에 도달했습니다. 이후 산타크리스티나 마을로 내려가는 방향으로 약 1시간 트래킹을 하고, 거기서 다시 사소롱고로 올라가는 케이블카로 환승했습니다. 버스와 케이블카를 조합하면 마을 간 이동도 크게 어렵지 않습니다. 다만 각 케이블카의 막차 시간을 반드시 미리 확인해야 합니다. 저희는 마지막 알디슈 케이블카 막차를 불과 20분 남기고 도착했는데, 그 20분이 얼마나 조마조마했는지 모릅니다.

  • RPD 주차 → 오르티세이 도보: 약 10분, 주차비 비교적 저렴
  • 세체다 케이블카: 두 번 탑승으로 정상 도달, 해발고도·접근성·경관 모두 높은 평가
  • 사소롱고 케이블카: 산타크리스티나 마을에서 탑승, 마찬가지로 두 번이면 뷰포인트 도달
  • 마르몰라다 정상: 케이블카 세 번 탑승 필요, 해발 3,000m 이상
  • 토파나 정상: 코르티나 단페초 시내에서 출발, 케이블카 세 번 탑승
요약: 슈퍼패스 하나로 일주일간 케이블카 50회 탑승 가능. 막차 시간 확인이 가장 중요한 변수.

세체다와 사소롱고, 직접 가보니 달랐던 것들

"아 이래서 돌로미티 돌로미티 하는구나." 세체다 정상에서 제 입에서 나온 말입니다. 배도 안 고프고, 말도 안 나오는 경험이었습니다. 세체다는 해발고도, 접근성, 자연 경관 세 가지 모두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곳인데, 실제로 가보니 그 말이 과장이 아니었습니다. 개방형 리프트에 앉아 파란 하늘 아래 웅장한 산맥을 발 아래로 내려다보는 순간, "여기 진짜 천국이다"는 말이 저절로 나왔습니다. 소 냄새가 진동하는 가운데요.

그런데 세체다에서 황당한 상황도 있었습니다. 뷰포인트에 더 가까이 가려다 보니 입장료를 요구하는 시설이 생겼는데, 알고 보니 오버투어리즘으로 몸살을 앓던 마을 주민들이 정부 허가 없이 임의로 설치한 불법 시설이었습니다. 여기서 오버투어리즘이란, 관광객이 지역 수용 한계를 초과해 몰리면서 주민 생활과 환경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현상을 말합니다. 주민 입장에서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지만, 일부러 이 지점까지 와서 "여기까지 왔는데" 하는 심리를 노린 구조라는 것도 느껴졌습니다. 저희는 아쉬운 마음을 안고 그냥 내려왔습니다. (출처: The Guardian)

사소롱고는 세체다와는 또 달랐습니다.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는 중에 언덕에 가려졌다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사소롱고의 자태가 그렇게 극적일 수가 없었습니다. 정상에 도착하자마자 저희를 반긴 건 뜬금없이 말 한 마리였는데, 그 풍경이 너무 그림 같아서 "그림 같은 풍경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라고 만들어진 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소롱고 인근에는 이번에 새로 생긴 트라만스 리프트 코스가 있는데, 여기서 올라가면 사소롱고와 피츠보를 동시에 볼 수 있는 뷰포인트가 나옵니다. 단, 가파른 언덕을 직접 올라가야 하는데 생각보다 훨씬 힘들었습니다. "발바닥과 바꾸는 뷰"라는 표현이 딱 맞습니다.

피츠보는 또 완전히 다른 세계였습니다. 해발 3,000m 이상으로 케이블카 한 번에 올라가는 구조인데, 높은 만큼 고산병 증세가 나타날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여기서 고산병이란, 고도가 높아질수록 기압과 산소 농도가 낮아져 두통, 어지럼증 등의 증상이 나타나는 상태를 말합니다. 실제로 저희도 살짝 증세가 느껴져서 정상 트래킹은 무리하지 않고 포기했습니다. 푸른 초원 대신 회색 바위만 가득한 풍경이 "다른 행성에 온 거 같다"는 느낌을 주는 곳이었습니다. (출처: 돌로미티 공식 관광청)

요약: 세체다는 전형적인 돌로미티 절경, 사소롱고는 극적인 등장과 말 포토스팟, 피츠보는 다른 행성 같은 회색 바위 풍경. 각자 성격이 완전히 다릅니다.

돌로미티 케이블카 여행, 이것만 알고 가면 덜 고생합니다

일주일을 직접 돌아다니면서 체감한 것들을 정리했습니다. 인터넷에서 찾은 정보가 아니라 실제로 겪어본 것들이라 이 글을 읽고 간다면 이부분만큼은 덜 고생하셨으면 하는 마음에 공유합니다.

  • 막차 시간은 반드시 전날 확인: 저희는 마지막 날 알디슈 케이블카 막차를 20분 남기고 뛰다시피 도착했습니다. 오전부터 움직이더라도 코스가 많으면 오후에 시간이 생각보다 빡빡해집니다.
  • 관짝 케이블카(텔레케빈 리프트)는 꼭 경험: 두 명이 겨우 서서 타는 작은 케이블카인데, 직원 아저씨가 팔을 잡고 밀어 넣어줍니다. 처음엔 무섭지만 저희가 돌로미티에서 탄 케이블카 중 가장 기억에 남았습니다.
  • 체력 관리가 실제 변수: 트라만스 뷰포인트나 마르몰라다 암벽 코스처럼, 케이블카 이후에도 가파른 구간이 있습니다. 저희도 운동 부족임을 현지에서 절절히 깨달았습니다.
  • 불법 유료 구역 주의: 세체다 뷰포인트 인근에 허가 없이 설치된 유료 시설이 있습니다. 여기까지 왔으니 하는 심리를 노린 구조입니다. 정보를 미리 알고 가면 당황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 아베라우 산장은 들를 가치 있음: 올라가는 길이 험하지만 거리가 짧고, 정상에서 수제 버거를 파는데 탁 트인 풍경 속에서 먹으니 맛이 무조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소스 없이 절인 야채와 소금만으로 만든 담백한 맛인데, 완전히 이탈리안 스타일도 아니고 한국 입맛에 살짝 가까워서 먹기 편했습니다.
  • 산타 막달레나는 저녁에 가야 의미 있음: 오들레 산군에 노을이 물드는 비경을 보려면 시간을 맞춰야 합니다. 저희는 전날 구름 때문에 실패하고 다음날 다시 방문했습니다. 두 번 가도 아깝지 않은 곳입니다.

겨울엔 스키장으로 운영되는 슬로프가 여름엔 탁 트인 쉼터로 바뀌는 곳, 8월에 눈싸움을 할 수 있는 마르몰라다, 협곡 사이를 날아다니는 새 옆에서 케이블카를 타는 경험. 돌로미티는 어디를 가도 감탄이 나오는 곳인데, 50번의 케이블카를 타고 나서도 내일이 더 기대됐습니다. 그게 이 여행의 가장 솔직한 후기입니다.

요약: 막차 시간 확인, 체력 비축, 불법 유료 구역 인지, 아베라우 산장과 산타 막달레나 시간 맞추기. 이 다섯 가지만 챙겨도 돌로미티 케이블카 여행의 질이 달라집니다.

돌로미티 슈퍼패스는 트래킹을 길게 하지 않으면서도 다양한 풍경을 많이 보고 싶은 분들에게 강력하게 권할 수 있습니다. 저희처럼 운동 부족인 사람도 케이블카와 리프트를 조합하면 하나도 안 힘들게 하루를 꽉 채울 수 있습니다. 단, 발바닥과 바꾸는 뷰가 있는 구간이 분명히 존재하니까, 체력을 조금은 비축해 두고 가시길 바랍니다. 미리 오기 전에 체력을 좀 길러 놔야 한다는 말, 저는 현지에서 깨달았지만 여러분은 지금 미리 알게 됐으니 그걸로 충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