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가계 패키지 3일 (천문산, 유리잔도, 쇼핑)
자유여행만 해왔던 저한테 패키지는 "단체로 몰려다니는 여행" 이미지라 솔직히 무시했던건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번 장가계 3박4일이 제 첫 패키지 여행이었는데, 출발 전부터 떠들썩한 단체활동, 빡빡한 일정, 쇼핑 코스 때문에 걱정이 앞섰습니다. 근데 다행히도 여행이 끝나갈 무렵이 되면서 제 편견이 무너지고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써보려 합니다.
천문산 가기 전, 쇼핑 코스 세 개가 먼저였습니다
장가계 패키지하면 흔히 "영화 아바타에 배경이 되는 기암절벽과 경치를 보러 가는 여행"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저도 그렇게 알고 있었고요. 그런데 실제로 3일 차 오전 일정은 쇼핑 세 개였습니다. 무릉 호수 관광이 중간에 잠깐 끼어 있었지만, 아침부터 보석 상가, 라텍스 매장, 옥 매장 순으로 돌았습니다. 대개 한 곳당 한 시간 정도 머무는데 실제로 저도 라텍스 매장에서 거의 한 시간을 있었습니다.
재밌었던 건 라텍스 매장 직원이 설명하길, 예전 라텍스 제품은 아이보리 색상이었는데 냄새가 심해서 요즘은 라벤더 꽃가루를 섞어 보라색이나 노란색으로 나온다고 하더라고요. 그 설명을 듣고 나서 아무생각없이 침대에 누웠다가 못 일어났습니다. 진짜로 너무 편한 거예요. 주변을 보니 일행 분들도 다들 드러누워 있었습니다. 가이드가 잠을 재우지 않고 관광을 시켜놓고 라텍스 매장에 데려온 이유를 그때 알았습니다. 몸이 피곤할수록 그 푹신함이 달콤해서 빠져들게 되거든요. 100만 원이 넘는 제품이었는데 살 뻔했다가 겨우 정신을 차렸습니다. 쇼핑 코스에 대해 한 가지 덧붙이자면, 이런 데서 파는 물건은 가격이 결코 저렴하지 않습니다. 정말 필요한 물건이 아니면 구매를 권하지 않습니다. 설명이 워낙 매끄러워서 말발에 흘리기 쉽거든요. 저도 하마터면 드론을 살 뻔했을 만큼 쇼핑할 때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는 걸 몸으로 배웠습니다.
천문산 유리잔도, 사진으로는 절대 전달이 안 됩니다
장가계 여행 중에서 천문산이 제일 궁금했습니다. 천문산 하이라이트인 천문동은 자연적으로 돌이 떨어져 나가면서 생긴 구멍인데, 그 아래로 999개의 계단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저는 계단 대신 에스컬레이터를 탔는데, 그 에스컬레이터만 5분 넘게 탔습니다. 높이 137m, 넓이 50m 규모의 구멍을 올려다보면서 올라가는 내내 다리가 굳고 오금이 저리다는 느낌이 뭔지 제대로 경험했습니다. 소리를 지르고 싶지 않았는데 저절로 입에서 알 수 없는 소리가 흘러 나와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에스컬레이터가 끝나고 나서 유리잔도 구간이 시작됩니다. 유리잔도란, 투명 유리 패널로 만든 절벽 위 통로를 말합니다. 이 구간이 이번 여행의 최대 난관이었습니다. 옆에서 보면 발밑 수백 미터 아래가 그냥 다 보이거든요. 저는 걸으면서 아예 발밑을 안 봤습니다. 바닥 안 보고 감으로만 따라갔는데, 그렇게 하는게 오히려 걸을 수 있는 방법이었습니다. "겁쟁이도 유리잔도는 쉽게 걷는다"는 말이 있다는데, 누가만든 말인지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특히 좁은 구간에서는 공포심이 극도로 올라와서 한발자국 떼기도 쉽지 않습니다. 고소공포증이 있거나 심장이 약한 분이라면 진지하게 한 번 더 생각해보시길 권합니다. 기곡 잔도 구간은 천문산 서쪽과 남쪽을 이어주는 코스로, 걷는 데만 1시간 20분 정도 걸렸습니다. 산에서만 15,000보를 걸었고, 하루 전체로는 25,000보를 넘겼습니다.
패키지여행, 다시는 안 하려 했는데 또 가고 싶어진 이유
하루에 자는 시간 빼고 모든 시간을 같은 패키지 팀원들과 함께 다니다 보니 어느 순간 그분들과 진짜 같이 여행하고 있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큰 소리 한 번 안 나고, 불평 없이 다들 웃으면서 다니셨거든요. 어렸을때 수학여행을 간 기분이 들기도 하고 그게 생각보다 훨씬 좋았습니다. 모르는 사람들과 일상적인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낯선 사람들과의 여행이 점점 따뜻해지는 걸 느꼈습니다.
패키지여행은 짧은 시간 안에 많은 걸 본다는 점에서 장점이 확실했습니다. 장가계에서는 천문산과 부용진 야경, 무릉 호수, 칠성산까지 나흘 안에 다 봤으니까요. 단점도 분명합니다. 한 곳에 오래 머물며 커피 한 잔 마실 여유는 없습니다. 칠성산에서 멋진 전망 앞에 테이블이 있었는데, 앉아서 즐길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장가계 삼박사일 내내 하루 2만 보 이상을 걸었고, 새벽같이 일어나서 밤늦게 돌아오는 일정을 반복했습니다. 피곤하지만 갓생을 사는것 같이 이상하게 힘이 넘치고 하루를 보람차게 보냈다는 뿌듯한 느낌을 여행와서도 느끼는게 너무나 한국인스럽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패키지여행이 처음이었던 저한테 장가계는 꽤 강렬한 첫 경험이었습니다. 천문산 유리잔도 위에서 온몸이 굳은 채로 끝까지 걸어 나온 뒤 그래도 재밌는 경험이었다라고 생각이 들었을 때, 그 여행은 완성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