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상해 침대기차 24시간 탑승기
상하이에서 하얼빈까지, 기차로 꼬박 24시간이 걸립니다. 처음 이 숫자를 봤을 때 솔직히 "이걸 왜 타지?"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그런데 직접 겪어보니, 24시간이 생각보다 훨씬 빨리 지나갔습니다. 뭔가 지루할거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그 시간이 길게 느껴지지 않았다는건 일단 재미있었다는 긍정적인 의미잖아요. 오히려 비행기보다 훨씬 인간적이면서 안전한 이동이었다고 느끼기도 했습니다.
침대기차를 선택한 이유 — 중국의 스케일부터 이해해야 합니다
중국 기차 여행을 알아보면 선택지가 꽤 많습니다. 고속열차, 일반, 급행, 그리고 침대기차. 여기서 침대기차란, 좌석 대신 2층 혹은 3층 구조의 침대가 놓인 칸으로 장거리를 이동하는 열차를 말합니다. 한국처럼 최장 3~4시간짜리 노선이 전부였다면 굳이 누울 이유가 없겠지만, 중국은 다릅니다. 상하이에서 칭다오만 해도 12시간, 하얼빈까지 가면 24시간이 넘습니다.
처음에는 상하이에서 칭다오(12시간)와 하얼빈(24시간) 사이에서 고민을 꽤 오래 했습니다. 결국 "이왕 타는 거 제대로 타보자"는 생각으로 상하이발 하얼빈행 24시간짜리를 선택했습니다. 기차표를 미리 예매한 뒤, 역에서 실물 티켓으로 교환해야 한다는 사실은 현장에 도착해서야 알았습니다. 창구 직원에게 여권을 보여주고 "노 티켓"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티켓이 필요없다는 말로 오해하고 잠깐 갸우뚱했는데, 알고 보니 그냥 교환 창구가 따로 있다는 말이었습니다. 기차역에 들어서면서 이미 규모에 압도당한다는 느낌은 가본 사람은 모두 공감할것같습니다. 공항인지 기차역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대합실 규모가 어마어마했고, 대합실 하나에만 수백 명이 앉아 있었습니다. 평범한 토요일 저녁이었는데도요. 여권 확인과 짐 검사를 마치고 탑승 게이트로 이동하는 과정은 한국 기차역보다 오히려 공항에 더 가까운 절차였습니다. 침대 등급은 총 세 가지로, 경침(가장 저렴한 등급으로 3층 구조, 매트리스가 단단함), 연침(매트리스가 부드러운 중간 등급, 4인 1실 2층 구조), 프리미엄 연침(가장 고급 등급으로 30만 원 이상, 개별 룸 구조)이 있었고, 저는 연침, 즉 17만 원짜리 중간 등급을 예약했습니다. 실제로 타보니 중간등급도 충분했습니다.
24시간 동안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지나 — 탑승 후 현실
7시 34분, Z172가 출발했습니다. 제 칸은 4인 1실이었고, 처음 마주친 룸메이트 분의 인상이 굉장히 좋아 보였습니다. 여기서 연침 4인실이란, 문이 없는 개방형 공간에 2층 침대 두 개가 마주보고 놓인 구조를 말합니다. 공간이 아담하다는 표현이 딱 맞았습니다. 짐을 올리고 나면 움직일 여유가 거의 없습니다. 미리 챙겨온 물건들이 꽤 도움이 됐습니다. 미리 다운받아놓은 이북 한 권, 개인 이불 커버. 후기를 찾아보니 침대가 다회용으로 여러 번 사용된 뒤 나중에 세탁하는 방식인 것 같았고, 실제로 이불에 얼룩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베트남 여행 때 썼던 개인 침낭 커버를 챙겨갔는데, 이게 없었다면 꽤 찝찝했을 것 같습니다. 그때 느낀 건, 도시를 벗어나자마자 인터넷이 뚝 끊겼다는 겁니다. 중국 내 로밍이나 유심 환경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저는 도시 구간을 벗어나는 순간 신호가 거의 사라졌습니다. 오프라인 콘텐츠 없이 탔다면 꽤 막막했을 텐데, 칼세이건의 <코스모스>를 들고 갔던 게 신의 한 수였습니다. 읽어도 읽어도 줄어들지를 않고 자꾸 펴기만 하면 기절했던 책을 24시간 기차에서 드디어 마저 읽었습니다. USB 충전 단자가 없다는 사실도 탑승 후에야 알았습니다. 칸 안에 콘센트가 딱 하나 있었는데, 4명이 공유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보조배터리는 필수입니다. 식당칸은 생각보다 시간 제약이 컸습니다. 아침에 가보니 10시 30분 이후에나 다음 식사 타임이 열린다고 했고, 점심을 결국 11시가 다 되어서야 먹었습니다. 메뉴는 도시락 형태로 밥과 고기, 야채가 담긴 것이었는데 생각보다 든든했습니다. 간장에 볶은 고기와 야채 몇 가지, 양도 상당했습니다. 식당칸 외에도 카트를 끌고 다니는 매점 직원이 수시로 지나갔고, 건과일이나 과일, 컵라면, 소시지 같은 간식을 팔았습니다.
중간에 텐진, 선양 같은 대도시에서 정차할 때는 잠깐 플랫폼에 내려볼 수 있었습니다. 선양 정차 때 커피를 사러 역 안으로 들어가 보려 했는데, 한 정거장 사이 거리가 워낙 길어서 시간이 충분할지 확신이 서지 않아 포기했습니다. 그냥 바깥 바람만 쐬고 돌아왔습니다.
하얼빈 도착, 그리고 24시간 기차를 다시 탈 것인가
저녁 7시 30분, 하얼빈에 내렸습니다. 문이 열리자마자 공기가 달랐습니다. 상하이와 달리 꽤 쌀쌀했습니다. 중국 최북단에 해당하는 도시답게, 위도 차이가 몸으로 느껴졌습니다. 기차가 한 22시간쯤 달렸을 때쯤부터는 솔직히 슬슬 내리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내리고 나니, 생각보다 이 여정이 깔끔하게 마무리됐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직접 겪어보니, 24시간 기차의 가장 큰 장점은 여유입니다. 비행기로 14시간 유럽을 가는 것보다 오히려 훨씬 낫다고 느낀 이유가 있습니다. 일단 눕고 싶으면 누울 수 있고, 식당칸으로 걸어갈 수 있고, 복도 의자에 나와 바깥 풍경을 볼 수도 있습니다. 급하게 뭔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이 없습니다. 그냥 열차 안에서의 하루를 사는 느낌이랄까요. 같은 방 메이트로 만난 왕 언니가 젤리, 바나나 과자를 나눠주셨고, 저도 다음에 카트가 지나가면 뭔가 사드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말이 거의 통하지 않아도 같은 공간에서 자고 먹고를 반복하다 보면 묘한 연대감이 생깁니다. 같은 공간에서 밥을 나눠먹고 잠을 자고, 이게 침대기차 여행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감각인 것 같습니다.
24시간 기차를 또 탈 것이냐고 묻는다면, 탑니다. 단, 다음에는 이것들을 꼭 챙길 것입니다.
- 개인 침낭 커버 또는 얇은 시트: 이불 위생이 걱정된다면 필수입니다.
- 보조배터리 완충: 칸 안 콘센트는 4인 공용이고, USB 단자 자체가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 오프라인 콘텐츠: 책, 다운로드한 영상, 게임 등. 도시 밖에선 인터넷이 거의 안 됩니다.
- 간식 약간: 매점 카트가 다니긴 하지만 식당칸 운영 시간이 제한적이라 출출한 순간이 분명 옵니다.
사실 이전 여정의 마지막에 체력이 꽤 바닥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24시간 기차 안에서 자고, 먹고, 좋은 분들과 짧게나마 대화를 나누고 나니 몸이 조금 회복된 느낌이 들었습니다. 여행 도중에 이런 쉼표 같은 이동이 생기는 것, 그게 침대기차의 또 다른 매력인 것 같습니다. 다음은 하얼빈 시내 구경기로 찾아오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