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소도시 하코다테 기차여행 (도시락, 야경, 시오라멘)
여행 계획을 짜다 보면 한 번쯤 이런 생각이 드실 겁니다. "그냥 목적지만 가면 되는데, 굳이 기차를 탈 필요가 있을까?" 저도 그랬습니다. 삿포로에서 하코다테까지 비행기로 환승하거나 버스를 타면 더 저렴하게 갈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기차 창밖으로 바다를 보면서 도시락을 까먹는 그 장면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거든요. 결국 저는 편도 10만 원짜리 기차표를 두 장 끊었고, 그 선택이 이번 5박 6일 홋카이도 여행에서 가장 잘한 일 중 하나가 됐습니다.
도시락 싸들고 기차 타는 오미야게
하코다테행 기차는 오후 2시였고, 저는 12시가 채 안 된 시간에 신치토세 공항에 도착해 있었습니다. 두 시간이 넘는 여유 시간. 공항을 그냥 앉아서 기다리기엔 아까워서 국내선 터미널 쪽 식품관을 천천히 돌아봤는데, 직접 겪어보니 이 시간이 여행의 진짜 시작이었습니다. 따끈따끈하게 튀겨주는 감자 튀김 가게 앞에서 한참을 구경했고, 도시락 코너에서는 성게 들어간 것, 연어 들어간 것 사이에서 뭘 살지 꽤 오래 고민했습니다.
여기서 오미야게란, 일본에서 여행지나 지역 특산품을 기념품으로 사 가는 문화를 말합니다. 공항이나 역 식품관에 포장 과자와 디저트가 그렇게 정성스럽게 진열돼 있는 이유가 바로 이 문화 때문이라고, 일본에 사는 지인에게 들었습니다. 실제로 제 눈앞에서도 현지인들이 커다란 쇼핑백 가득 오미야게를 챙겨 가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기차표 발권은 공항 지하 1층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했습니다. 여기서 지정석이란, 미리 좌석 번호를 확정해 두는 방식으로, 패스권과 달리 원하는 자리를 골라 앉을 수 있습니다. 저는 창가 자리가 목적이었기 때문에 왕복 모두 지정석으로 예매해 뒀고, QR 코드를 보여주니 바로 실물 티켓 두 장으로 바꿔주셨습니다. 신치토세 역에서 한 번 환승을 해야 하는데, 플랫폼 분위기가 기차역 특유의 고즈넉한 느낌이 있어서 환승 대기 시간도 전혀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기차 안에서 도시락을 펼쳤을 때, 그게 이번 여행에서 제가 가장 기다렸던 순간이었습니다. 간장을 뿌려 먹는 방식이었는데, 창밖으로 바다가 흐르는 걸 보면서 먹으니 배가 불러서 맛있는 건지, 분위기에 취해서 맛있는 건지 구분이 안 됐습니다. 결국 혈당스파이크가 와서 졸다가 도착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금방이었습니다.
- 기차표 종류: 지정석 예매 또는 패스권 두 가지 방법이 있으며, 창가 자리 등 원하는 좌석이 있다면 지정석이 유리합니다.
- 발권 장소: 신치토세 공항 지하 1층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QR 코드 제시 후 실물 티켓으로 교환 가능합니다.
- 환승 정보: 신치토세 공항역에서 삿포로 방향 플랫폼으로 한 번 환승해야 합니다.
- 도시락 구매: 공항 식품관 외에 환승 역에서도 구매할 수 있어, 시간이 부족하다면 역에서 사도 됩니다.
소도시의 온도 와 시오라멘
하코다테에 도착했을 때 첫 번째로 느낀 건 공기였습니다. 9월 중순 말 정도의 날씨라고 느껴질 만큼 서늘했고, 대도시 특유의 긴장감이 없었습니다. 숙소는 역에서 5분 거리의 컴포트 호텔로, 1박에 65,000원이었는데 창문도 크고 콘센트도 넉넉해서 가성비로는 전혀 불만이 없었습니다. 주변에 식당과 편의점이 가까이 있었고, 대로변이라 밤에 혼자 다녀도 무섭지 않았습니다.
직접 겪어보니, 하코다테가 대도시와 가장 다른 점은 사람들의 태도였습니다. 가는 곳마다 웃으면서 응대해 주시고, 제가 뭔가를 주저하거나 헤매는 기색을 보이면 먼저 다가오시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그 분위기가 여행 내내 이어졌습니다. 아카렌가 창고 근처 럭키삐에로라는 곳에서 차이니즈 버거를 먹을 때, 주문을 받는 분이 굉장히 불친절하게 대응하셔서 좀 당황스러웠는데, 그게 오히려 기억에 남을 정도로 하코다테에서 불친절한 경우가 드물었다는 방증이기도 했습니다.
아침 시장은 오전 일찍 갔는데, 여기서 유바리 메론이란 홋카이도 유바리 지역에서 재배되는 고당도 멜론으로, 여름이 제철입니다. 제가 갔을 때는 이미 유바리 메론 시즌이 끝나 있었고, 대신 후라노 메론을 드셔 보라고 권유받았습니다. 먹어보니 엄청 달았습니다. 오징어 체험도 해봤는데, 방금 잡은 오징어를 바로 회로 썰어주는 방식이었고 꼬들꼬들하고 달짝지근한 맛이 확실히 신선했습니다. 다만 생각보다 시간이 좀 걸렸고, 그 시간에 카이센동을 먹을걸 싶다는 후회가 살짝 들었습니다.
시오 라면은 하코다테 명물 중 하나인데, 여기서 시오 라면이란 소금 베이스 국물의 라면으로, 맑고 깔끔한 것이 특징입니다. 이틀에 걸쳐 두 곳을 비교해서 먹어봤습니다. 첫날 아지사이는 국물은 무난했지만 토핑이 아쉬웠고, 둘째 날 지옥 라면집은 이번 하코다테에서 먹은 것 중 제일 맛있었습니다. 10시 체크아웃 직후 한 시간을 줄 서서 11시에 들어갔는데, 오픈 런을 하면 줄 없이 들어갈 수 있다고 안내받았습니다.
야경과 기차값 — 하코다테를 다시 올 이유와 솔직한 단점
하코다테 전망대 야경은 솔직히 그렇게 큰 기대를 안 하고 올라갔습니다. 리뷰마다 "3대 야경까지는 아니다"는 말이 많아서요. 그런데 직접 겪어보니 제 인생 3대 야경 안에 들어갈 것 같습니다. 유리 너머가 아니라 바람을 직접 맞으면서, 오목하게 들어온 바다와 시가지가 맞물리는 형태가 눈앞에 펼쳐지는 느낌이 압도적이었습니다. 샹젤리제 야경과 비교해도 감동이 그 정도 급이었다고 느꼈습니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뒤에서 조금씩 자리를 채워가며 겨우 정면을 봤지만, 그래도 충분히 가볼 만한 가치가 있었습니다.
반면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기차비는 비쌉니다. 편도 약 10만 원, 왕복이면 20만 원으로 비행기값과 비슷한 수준입니다. 그래서 이동 자체에 가치를 두지 않는 분이라면 하코다테 직항을 이용하시는 편이 훨씬 합리적입니다. 부산 출발 기준으로는 직항이 없는 걸로 파악했고, 그래서 저는 삿포로를 먼저 들러 기차로 이동하는 루트를 선택했습니다. 삿포로 2박, 하코다테 3박의 5박 6일 일정이었는데, 기차 이동 시간을 감안해서 일정을 여유 있게 잡았던 것이 잘한 선택이었습니다.
쇼핑을 원하시는 분들에게는 솔직히 추천하기 어렵습니다. 백화점이 없고 대형 쇼핑 시설도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대신 아카렌가 창고 주변 상점가, 아침 시장, 맥스 밸류 마트 같은 곳에서 소소한 쇼핑은 충분히 가능했습니다. 맥스 밸류는 관광지 마트가 아닌 진짜 현지 마트였는데, 가성비가 너무 좋아서 오히려 일찍 발견하지 못한 게 아쉬울 정도였습니다. (출처: MaxValu Japan 공식 사이트)
하코다테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하코다테만의 감성"이 있다는 겁니다. 조용한 소도시 여행을 원하고, 현지인들 속에서 여행하고 싶고, 먹는 것 위주로 일정을 채우고 싶은 분들에게 잘 맞는 곳이었습니다. 저는 겨울에도 한번 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항공 정보나 최신 직항 노선은 변동이 있을 수 있으니 출발 전에 확인해 보시길 권합니다. (출처: JR 홋카이도 공식 한국어 안내)
새벽 6시에 집을 나서서 지하철, 비행기, 기차를 모두 타고 하코다테 숙소에 도착했을 때는 거의 12시간이 걸려 있었습니다. 기차에서 내릴 때만 해도 별로 안 힘든데 싶었는데, 숙소 문을 닫는 순간 긴장이 풀리면서 피곤함이 한꺼번에 몰려왔습니다. 그런데도 그 피곤함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뭔가 제대로 이동한 사람의 피곤함이랄까요. 창밖 바다, 역 플랫폼의 공기, 도시락 뚜껑 열던 순간, 그리고 전망대에서 맞은 바람. 이 여행에서 제가 원했던 장면들이 하나도 빠지지 않고 다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