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리만자로 등반기 (고산병, 마랑구, 실전팁)
솔직히 저는 킬리만자로가 이렇게까지 고산병이 심한 산인지 몰랐습니다. 아프리카 최고봉이라고 하면 왠지 "걸어서 올라가는 산"이라는 인식이 있잖아요. 저도 그랬습니다. 기술적인 암벽 구간도 없고, 특별한 장비도 필요 없다고 해서 가볍게 봤던 게 사실이에요. 근데 막상 4일을 버텨보니까 — 새벽 3시에 화장실 가려고 일어나고, 다섯 걸음 걷고 멈추고를 반복하면서 — "이게 걸어서 올라가는 산이 맞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700m 마랑구 루트에서 시작
제가 선택한 루트는 마랑구 루트였고, 출발 지점 고도가 약 2,700m였습니다. 첫날 이동 목적지는 호롬보 산장(3,700m), 그 다음이 키보 산장(4,700m), 그리고 정상이 5,895m입니다. 숫자로 보면 깔끔하죠. 하루에 딱 1,000m씩. 근데 이게 문제였습니다.
킬리만자로 등반에서 "고산병"이란 고도가 급격히 높아질 때 신체가 산소 부족에 적응하지 못해 생기는 증상을 말합니다. 두통, 구역질, 수면 장애, 소변 빈도 증가 등이 대표적이에요. 저는 3일차 밤에 8시, 10시, 12시, 새벽 3시 — 네 번을 일어나서 화장실을 다녀왔습니다. 그것도 영하에 가까운 온도에서요. 저뿐만이 아니라 같이 간 모든 분들이 잠을 제대로 못 잤어요.
여기서 마랑구 루트란 킬리만자로 루트 중 유일하게 산장(hut)에서 숙박하는 루트로, 상대적으로 편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근데 편하다는 게 고산병이 덜하다는 뜻은 아니었어요. 오히려 제가 묵었던 키보 산장은 밖과 온도 차이가 거의 없을 정도로 추웠고, 히말라야 트레킹에서 경험했던 담요 제공이나 따뜻한 방 같은 건 없었습니다.
그리고 고도가 오를수록 풍경도 바뀌었습니다. 저는 가다가 처음으로 자이언트 세네시우라는 식물을 발견했는데, 야자수처럼 생긴 이 독특한 식물은 킬리만자로 고지대에서만 볼 수 있는 희귀 식물입니다. 안개 속에서 그 실루엣이 나타나기 시작할 때, 내가 분명 다른 세계로 올라가고 있구나 싶었어요.
- 1일차: 마랑구 게이트(2,700m) → 호롬보 산장(3,700m), 약 6시간 소요
- 2일차: 호롬보 산장 → 키보 산장(4,700m), 오르막 집중 구간, 자이언트 세네시우 등장
- 3일차(정상 도전): 밤 12시 출발 → 약 9시간 등반 → 정상(5,895m) → 하산 1시간
- 고산 적응 훈련: 키보 산장 도착 후 짐 내려놓고 추가로 100~200m 더 올라갔다 내려오는 일정 포함
히말라야 비교해 보면 킬리만자로 고산병이 왜 더 심한지 보인다
킬리만자로를 다녀오기 전에 히말라야 트레킹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 당시에는 고산병이 그렇게 심하게 오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솔직히 "킬리는 그보다 쉽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근데 막상 비교해보니 이유가 있더라고요.
히말라야 트레킹은 오르락내리락하는 구간이 많습니다. 여기서 업다운이란 단순히 힘들다는 뜻이 아니라,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오면서 몸이 고산에 적응할 시간을 벌어주는 구조를 말합니다. 체력적으로는 더 힘들 수 있어도, 신체가 천천히 고도 변화에 익숙해질 기회가 생기는 거예요.
반면 킬리만자로는 업다운 없이 그냥 계속 위로만 갑니다. 첫날 1,000m, 둘째 날 1,000m, 셋째 날 밤에 또 1,200m 이상을 단숨에 치고 올라가요. 신체가 적응할 새가 없는 겁니다. 그래서 토하거나 쓰러지는 사람들이 많고, 제가 등반하는 동안에도 앰뷸런스가 실제로 한 명을 후송해 가는 걸 목격했습니다.
킬리만자로 등반 비용에는 이 응급차 비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킬리만자로 응급 시스템이란 공원 내에서 환자 발생 시 구조대와 앰뷸런스를 파견하는 체계를 말하며, 이 비용이 입장료·가이드 비용에 내재되어 있습니다. 헬리콥터 후송은 별도 비용이 발생하며, 여행자 보험이 없으면 본인이 전액 부담해야 합니다. 저는 보험 없이 갔다는 걸 올라가는 중에 새삼 실감했습니다. (출처: Tanzania National Parks)
정상 도전 당일 — 밤 12시에 출발해서 9시간을 걸었습니다. 내려오는 데는 1시간이었어요. 올라갈 때 고산병 약을 아침에 한 알 먹었는데, 약효가 오히려 졸음을 불러왔습니다. 이미 숨은 안 쉬어지고, 다섯 걸음 걷고 멈추기를 반복하는 상황에서 졸음까지 몰려오니까 몸이 완전히 정지하는 느낌이었어요. 카메라를 들 힘이 없어서 그 구간은 영상이 하나도 없습니다. 지금도 그게 제일 아쉬워요.
가이드 딕슨과 라라랜드는 제가 중간에 포기하고 싶다고 했을 때 계속 "갈 수 있다"고 해줬습니다. 가이드의 역할이 단순한 길 안내가 아니라는 걸 그때 제대로 느꼈어요. 제 숨소리를 들으면서 언제 쉬어야 할지를 판단해주는 사람 — 그게 없었다면 저는 중간에 내려왔을 겁니다. (출처: Lonely Planet - Kilimanjaro)
킬리만자로 가기 전에 알았으면 달랐을 실전팁
킬리만자로를 "걸어서 올라가는 산이니까 어렵지 않겠지"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이제 그 말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기술적 난이도는 낮아도 생리적 난이도는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정상 도전 당일에 제 몸 상태가 어땠냐면 — 소화가 안 되고, 입술이 다 부르트고, 코 안에서 피딱지가 생기고, 4일째 샤워를 못 한 상태였습니다. 선크림을 꼼꼼히 발랐는데도 얼굴 일부에 화상이 생겼어요.
여기서 고산에서의 자외선 화상이란 고도가 높아질수록 대기 차폐 효과가 줄어들어 자외선 노출량이 급증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특히 킬리만자로는 적도 근처라 자외선 지수가 극단적으로 높습니다. 저는 이걸 과소평가했고, 그 결과가 화상과 입술 갈라짐이었습니다.
제가 실제로 느낀 것들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고산병 약 타이밍: 정상 도전 당일 아침에 먹었더니 약효로 인한 졸음이 등반 중에 왔습니다. 복용 시점을 가이드와 미리 상의하는 게 낫습니다.
- 바세린과 선크림은 필수: 입술 보호를 위한 바세린과 SPF 50 이상 선크림은 넉넉하게 챙겨야 합니다. 저는 부족했어요.
- 소화 문제 대비: 고도가 높아지면 소화 기능이 저하됩니다. 가이드팀이 소화 안 된다고 했더니 죽을 끓여줬어요. 본인 소화 상태를 가이드에게 솔직하게 말하는 게 좋습니다.
- 여행자 보험 필수: 헬리콥터 후송 비용은 보험 없이는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저는 이 부분을 너무 가볍게 생각했습니다.
- 카메라 배터리: 저온에서 GoPro가 반복적으로 방전됐습니다. 예비 배터리를 여러 개, 그리고 체온으로 데워가며 사용하는 방법을 미리 알아두세요.
내려와서 먹은 김치찌개 한 그릇이 지금도 기억에 남습니다. 4일 만에 먹은 따뜻한 한식이었는데, 그 순간만큼은 킬리만자로가 "참 잘 다녀왔다"는 감정으로 바뀌더라고요. 결국 살아 내려온 거니까요.
정상에서 찍은 사진이 한 장도 없습니다. 카메라를 들 힘이 없었으니까요. 근데 이상하게도 그게 오히려 이 등반을 더 선명하게 기억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다섯 걸음 걷고, 멈추고, 숨 고르고, 다시 다섯 걸음. 그 감각은 영상보다 훨씬 오래 남아 있어요. 킬리만자로를 생각하는 분들이라면 — 쉽다는 말과 힘들다는 말 사이 어딘가에 진실이 있다는 걸 미리 아셨으면 합니다. 저는 그 중간 어딘가에서 꽤 오래 서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