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 나홀로 여행 (항공 지연, 툭툭, 로컬 버스)
예상하긴 했는데요 진짜로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하지만 스리랑카행 직항편, 인천공항에서 4시간 30분 지연됐습니다. 3시에 일어나 5시에 공항에 도착했는데, 비행기는 아직 거기 있었습니다. 시작부터 이랬으니 이 여행이 순탄할 리 없다는 걸 그때 이미 알았어야 했는데요.
출발도 전에 삐걱 — 항공 지연에서 배운 것
스리랑카항공 직항은 인천-콜롬보 노선 기준 주 1회입니다. 선택지가 없으니 예약할 수밖에 없었는데, 당일 공지도 없이 4시간 30분이 밀렸습니다. 미리 알았으면 조금이라도 더 잤을 텐데, 저는 한 시간도 못 자고 공항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여행자 보험이었습니다. 여기서 항공 지연 보상이란, 출발이 일정 시간 이상 지연될 경우 공항 내 식음료 구입 비용을 보험사가 보전해 주는 제도를 말합니다. 저는 한도 30만 원짜리 특약이 있었고, 실제로 잠바주스, 파리크라상 샌드위치, 음료수 등을 사서 7만 원대를 썼습니다. 뭔가 이득인 것 같으면서도 그냥 잠이나 더 자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비행기를 기다리는 동안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제가 스카이스캐너로 항공권을 조회했을 때 왕복 150만 원이 나왔는데, 친구 핸드폰으로 같은 노선을 검색했더니 왕복 70만 원이 나온 겁니다. 직항으로요. 여기서 쿠키 기반 가격 변동이란, 검색 플랫폼이 이용자의 브라우저 쿠키와 검색 이력을 분석해 반복 방문자에게 더 높은 가격을 노출하는 방식을 말합니다. 여행을 자주 다니는 사람일수록 더 비싼 가격을 보게 되는 구조입니다. 앞으로 항공권을 살 때는 반드시 시크릿 모드나 쿠키 삭제 후 검색해야겠다고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 항공 지연 보험 한도: 30만 원 (실 사용액 약 7만 원)
- 직항 편수: 인천-콜롬보 주 1회, 선택지 없음
- 항공권 가격 차이: 일반 검색 150만 원 vs 시크릿 모드 70만 원
공항 밖에서 툭툭 잡기 — 첫 번째 현지 협상
콜롬보 공항에 도착한 순간부터 흥정이 시작됐습니다. 공항 안에서 택시 기사가 먼저 붙었는데, 약 35km 거리에 6,900루피를 불렀습니다. 당시 제 환율 감각으로도 너무 비싸다 싶었고, 저는 일단 빠이빠이 했습니다.
공항 밖으로 나가서 그랩 앱으로 툭툭을 불렀습니다. 여기서 툭툭이란, 동남아시아와 남아시아 전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삼륜 오토바이 택시를 말합니다. 스리랑카에서는 이게 현지인들의 주요 교통수단 중 하나입니다. 앱으로 부르니 가격 협상 없이 합리적인 요금이 나왔고, 결국 무사히 숙소까지 왔습니다. 공항밖으로 섣불리 나오지 말라는 선배여행자의 후기도 있었지만, 나와서 직접 해결하니 다행히 됐습니다.
그날 숙소는 에어컨에 책상까지 있는 나름 깔끔한 게스트하우스였고, 20달러 선이었습니다. 그런데 첫날 밤 천둥번개가 너무 심해서 밖에 나가질 못했습니다. 개미가 수십 마리 있어서 호랑이 크림 바르고 잔 것도 그날이었고요. 다음날 아침 더 저렴하면서 좋은 숙소로 바로 옮겼습니다. 내 방에 놓고간 하트 모양을 그려둔 체크인 메모를 발견했을 때는 피식 웃었습니다.
콜롬보의 길이 생각보다 너무 깨끗해서 놀랐습니다. 인도 바로 옆 나라인데 느낌이 완전히 달랐고, 맨발로 걷는 사람들이 꽤 많았습니다. 종교적 이유로 그러는 것 같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길 자체가 신성하게 여겨지는 곳이었습니다. 인도랑 완전히 다른 분위기라는 게 첫날의 가장 큰 발견이었습니다.
로컬 버스 타고 불라불라로 — 현지인 옆에서 쿠키 받은 날
콜롬보에서 불라불라로 이동할 때 로컬 버스를 탔습니다. 여기서 로컬 버스란, 여행자용 투어 버스가 아닌 현지인들이 실제로 타고 다니는 시내 및 시외 노선 버스를 말합니다. 버스 앞에 목적지가 싱할라어로 적혀 있고, 현지인들에게 물어물어 타야 하는 방식입니다.
버스 안이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운전석 위부터 아래까지 장식이 가득했고, 코코넛에 향을 피워놓은 제단 같은 것도 있었습니다. 출발하고 사람이 점점 몰려들더니 중간쯤에는 제 캐리어가 들어간 앞 공간이 사실은 짐 두는 자리였다는 것도 그때 알았습니다. 한 시간을 달려 불라불라에 도착했습니다.
가는 도중에 옆에 앉은 분이 뭔가를 주셨습니다. 알고 보니 쿠키였는데, 저도 가방에서 쿠키를 꺼내 드렸습니다. 말이 전혀 통하지 않아도 그런 식으로 뭔가가 오갔습니다. 그게 이 버스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었습니다.
불라불라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한 건 피자헛에 들어간 것이었습니다. 스리랑카에 와서 현지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한 끼도 제대로 못 먹은 상태라 어쩔 수 없었습니다. 개인 피자 하나에 콜라, 포테이토까지 시켰는데 가격이 1,060루피, 한국 돈으로 6,000원대였습니다. 그게 그렇게 감격스러울 수 없었습니다. (출처: Pizza Hut Sri Lanka)
다음날 템플을 돌아다니면서 망고를 400원에 샀습니다. 파리가 많아서 처음에 먹기 망설였는데, 그냥 샀더니 달달하고 맛있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현지 스님을 만났는데, 46세라고 하셨는데 전혀 그렇게 안 보이셨습니다. 스리랑카 사람들의 빨간 입술도 그때 궁금해졌는데, 베텔 잎에 빈랑 열매를 싸서 씹는 거였습니다. 먹어보라고 권하셨는데 무서워서 못 먹었습니다.
- 로컬 버스 소요 시간: 콜롬보 → 불라불라 약 1시간
- 피자헛 개인 피자: 약 1,060루피 (한화 6,000원대)
- 망고 가격: 약 400원 / 개
- 베텔(빈랑): 스리랑카 현지인들이 즐기는 씹는 기호품, 입술이 붉게 착색됨
스리랑카, 쉽지 않지만 그래서 재밌는 곳
스리랑카가 원래 2020년 3월에 가려고 예약했다가 코로나로 강제 취소된 곳이었습니다. 4년 넘게 기다린 여행치고는 첫날이 너무 꼬였고, 이틀째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싫지가 않았습니다.
스리랑카는 관광객이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로컬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만족도가 높을 수 있는데, 반대로 여행 경험이 많지 않은 사람에게는 진입 난이도가 꽤 높은 나라입니다. 여기서 로컬 여행이란, 현지인 전용 교통수단을 이용하고 관광지화된 식당 대신 현지인이 다니는 식당을 찾아다니는 방식의 여행을 말합니다. 스리랑카는 그게 가능한 나라이기도 하고, 그게 쉽지 않은 나라이기도 합니다.
사기를 시도하는 사람도 있었고, 너무 많이 요구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템플에서 도네이션을 8,000루피 넘게 넣었는데, 환율 감각이 아직 없어서 그랬습니다. 스리랑카 타임도 있었습니다. 툭툭을 불렀는데 15분째 오고 있다고 해서 한 시간 넉넉히 잡고 움직여야 한다는 걸 그날 배웠습니다. (출처: Sri Lanka Tourism Development Authority)
모기도 많습니다. 짧은 바지는 내려놓고, 다리를 가리는 게 맞습니다. 스리랑카의 단점을 굳이 꼽자면 모기라고 하고 싶을 만큼, 다른 건 생각보다 견딜 만했습니다. 까마귀 떼, 천둥번개, 개미 수십 마리와 함께한 첫날 밤을 버텼으니, 이제 어지간한 건 버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여행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아무것도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는데, 그래서 기억에 남는다"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4년 전에 못 간 아쉬움을 안고 갔는데, 막상 가보니 스리랑카는 그냥 순하게 맞아주는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그게 오히려 좋았습니다. 혹시 스리랑카를 고민 중인데 선뜻 발이 안 떨어지신다면, 지금이 맞는 타이밍일 수 있습니다. 관광객이 적은 지금이 로컬 여행자에게는 제일 좋은 시기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