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여행 실전 (마일리지, 런던 물가, 한인민박)
대한항공 마일리지로 런던 직항 편도를 10만 원에 끊었습니다. 저도 처음엔 믿기지 않았어요. 저가 항공만 타다 보니 마일리지가 쌓인 줄도 몰랐거든요. 우연히 앱을 열었더니 숫자가 거기 있었고, 가족 합산을 더하니 "이거 뭔가 되겠는데?" 싶었습니다. 결국 런던 직항 편도 10만 원, 귀국편 티웨이항공 50만 원대, 합쳐서 런던·파리 왕복 비행을 60만 원대로 해결했습니다. 유럽 비행이 비싸서 못 간다고 생각하셨던 분 있으신가요? 저도 그랬습니다. 그래서 이번 후기를 최대한 솔직하게 적어 보겠습니다.
마일리지로 비행값 잡기
여기서 가족 합산 마일리지란, 대한항공 스카이패스 회원끼리 마일리지를 묶어 한 장의 보너스 항공권을 발권하는 방식입니다. 혼자 모은 마일리지로는 장거리 직항이 모자랄 때도 가족 계정을 합치면 충분히 커버가 되는 경우가 생깁니다. 저는 평소 저가 항공만 탔기 때문에 대한항공 마일리지가 쌓일 리 없다고 생각했는데, 카드 실적이나 파트너사 포인트가 조금씩 쌓여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한 번이라도 대한항공 앱을 열어서 잔여 마일리지를 확인해 보신 적 없으셨다면, 지금 바로 확인해 보시는 걸 권해 드립니다.
인천공항 제2터미널에 도착했을 때 첫 번째로 실감한 건 사람 수였습니다. 수하물 위탁 줄, 출국 수속 줄이 어마어마했고, 면세구역 스타벅스 줄이 너무 길어서 결국 던킨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14시간 25분짜리 장거리 비행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한 번 체력을 소모한 셈이었죠. 그래도 대한항공이었기 때문에 기내에서 10시간 넘게 잘 수 있었고, 런던에 내릴 때는 컨디션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저가 항공에서 장거리 비행과 풀서비스 항공사 장거리 비행은 체감이 확실히 다르더라고요.
그리고 런던 입국 전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올해부터 영국 ETA(Electronic Travel Authorisation)가 한국 여권 소지자에게도 의무 적용됩니다. 여기서 ETA란 미국의 ESTA와 비슷한 개념으로, 영국 입국 전 온라인으로 미리 전자 입국 허가를 받아 두는 제도입니다. 저는 출발 직전에 겨우 알았습니다. 미리 알았다면 더 여유롭게 준비했을 텐데, 정말 아찔했습니다. 런던 가시는 분들은 항공권 발권과 동시에 ETA부터 챙기세요. (출처: 영국 정부 공식 ETA 신청 페이지)
한인민박 런던 숙소, 신중해야 합니다
런던 숙소를 고를 때 가장 먼저 느낀 건 "물가가 살인적이다"였습니다. 호텔은 당연히 엄두가 안 났고, 에어비앤비도 런던 기준으로는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러다 선택한 게 한인민박이었는데, 여기서 한인민박이란 현지에 거주하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로, 주로 한국 여행자를 대상으로 저렴한 숙박을 제공하는 곳입니다. 제가 묵은 팝콘민박은 2인실 기준 1박에 평균 10만 원 정도였습니다. 런던 물가를 감안하면 상당히 합리적인 편이었습니다.
숙소의 실제 장점은 생각보다 컸습니다. 공용 주방이 있어서 저는 밤에 안성탕면을 끓여 먹었고, 계란·빵·시리얼도 갖춰져 있었습니다. 월수금에는 빨래까지 해 주십니다. 체중계도 있었고요. 10만 원짜리 런던 숙소에서 이 정도면 꽤 만족스러운 구성이었습니다. 단점이라면 드라이어 사용 시간이 아침 8시부터라는 규정이 있어서, 저처럼 새벽 4시에 기상해서 5시에 머리를 감으면 8시까지 자연 건조로 버텨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매일 젖은 머리로 런던 거리를 돌아다닌 이유입니다.
숙소가 한인민박이다 보니 심리적 안정감도 있었습니다. 런던은 전반적으로 안전한 도시라는 인상을 받았지만, 혼자 여행할 때 같은 언어를 쓰는 공간에 있다는 것 자체가 주는 여유가 분명히 있더라고요. 숙소 자체는 조용했습니다. 5일 내내 다른 투숙객을 거의 마주치지 못할 만큼 조용했고, 그 덕분에 새벽에 블로그 글을 작성하거나 영상을 만드는 데도 방해가 없었습니다. 저는 하루에 각잡고 몇시간씩은 디지털노마드로서 할 일을 해야되어서 , 이 부분은 특히 중요했습니다.
런던 물가 실전 — 외식은 비싸고, 마트는 생각보다 괜찮습니다
런던 물가가 비싸다는 말은 들었지만, 직접 경험하니 다른 차원이었습니다. 파운드 환율이 많이 올라 있는 지금, 1파운드를 넘길 때마다 계산기를 두드리게 됩니다. 제가 먹은 음식 가격을 솔직하게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피시앤칩스 (해피데이지): 16파운드, 한화 약 2만 9천 원. 얼굴 크기만 한 생선 튀김에 감자튀김이 포함된 구성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맛없다고 하는데 저는 솔직히 맛있었습니다. 맥주까지 시켰으면 진짜 완벽했을 것입니다.
- 파에야 (버로우 마켓 길거리): 19파운드, 한화 약 3만 5천 원. 길거리 음식인데 이 가격이라는 게 처음엔 놀라웠습니다. 그래도 새우가 크고 맛이 제법이었습니다.
- 블랙락 스테이크 럼프캡: 기다림 40분, 소음 심함, 비계 부분 아쉬움. 그러나 고기 자체는 95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미디엄 레어로 주문하면 좋습니다.
- 런던 베이글 (브릭레인): 8~9파운드. 피클·머스타드·두꺼운 고기 조합이 예상 밖으로 맛있었습니다. 런던에서 가성비 최상위 식사였습니다.
- 스콘+크루아상 (게일스 베이커리): 2개에 약 2만 1천 원. 미국도 울고 간다고 생각했지만, 스콘과 클로티드 크림 조합은 버킷리스트였으니 후회는 없습니다.
반면 마트는 달랐습니다. 세인즈버리스에서 피자 한 판이 6.5파운드, 치킨 다리 한 팩이 2.25파운드, 양고기 스테이크가 5.75파운드였습니다. 여기서 세인즈버리스란 영국의 대형 슈퍼마켓 체인으로, 우리나라로 치면 이마트나 홈플러스 정도의 위상입니다. 숙소에 주방이 있다면 마트 장을 봐서 직접 요리하는 게 생활비를 확실히 줄여 줍니다. 저처럼 공용 주방이 있는 한인민박을 쓴다면 더더욱 활용할 만합니다. (출처: Sainsbury's 공식 사이트)
영국 팁 문화에 대해서도 짚고 가겠습니다. 여기서 서비스 차지란 팁을 별도로 요구하는 대신 영수증에 자동으로 부과되는 금액으로, 원칙적으로 영국은 팁 없는 나라입니다. 그러나 요즘 식당들이 계산서에 1~2파운드씩 서비스 차지를 자동으로 붙이는 추세입니다. 빼달라고 하면 빼 주지만, 말하기 애매하면 그냥 내는 경우도 많습니다. 저는 그냥 냈습니다.
런던에서 돈 안 쓰고 즐기는 법 — 박물관, 공원, 그리고 감성
런던이 비싸다는 건 맞지만, 공짜로 즐길 수 있는 것들이 생각보다 훨씬 많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게 박물관 무료 입장 정책입니다. 여기서 테이트 모던이란 런던 템스강 남쪽에 위치한 현대미술관으로, 앤디 워홀의 마릴린 먼로 연작, 뒤샹의 샘 복제품, 한국 작가의 10억 원대 낙찰작까지 무료로 볼 수 있습니다. 내셔널 갤러리, 대영박물관도 마찬가지입니다. 비 오는 날 박물관에서 시간을 보내면 교통비 외에 추가 지출이 없고, 화장실도 깔끔합니다. 여행 중 화장실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겪어본 분들은 아실 겁니다.
하이드 파크는 둘레가 4.8km, 무려 42만 평 규모입니다. 새벽에 런닝하는 사람들, 자전거 타는 사람들, 잔디에 누워 햇빛 쬐는 사람들로 가득했습니다. 입장료 없이 이 공간을 쓸 수 있다는 게 솔직히 부러웠습니다. 서울 한복판에 이런 공원이 있다면 어떨까, 잠깐 그런 생각도 했습니다. 지쳐서 카페에 들어가면 만 원이 순삭인데, 공원에서 잠깐 앉아 있으면 그 돈이 절약됩니다.
버스도 생각보다 훌륭한 관광 수단이었습니다. 2층 버스 맨 앞자리에 앉으면 도시 전체가 파노라마로 펼쳐집니다. 어느 날은 저 혼자 2층에 덩그러니 남겨진 적도 있었는데, 그 기분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교통카드(트래블로그 등)만 있으면 바로 탑승이 되고, 따로 앱을 설치하거나 현금을 찾지 않아도 됩니다. 런던 지하철인 언더그라운드보다 지상 버스가 풍경 보는 재미는 훨씬 낫습니다. 단, 출퇴근 시간에는 2층도 꽉 찹니다.
저는 런던에 있는 5일 내내 거의 맑은 날씨를 만났습니다. 처음 이틀은 패딩을 사야 할 것 같은 추위였는데, 3일째부터 갑자기 따뜻해졌습니다. 런던 날씨는 예측 불가라는 말이 정말 맞습니다. 옷은 사계절 대비로 챙기시되, 경량 패딩 하나는 반드시 넣으시길 권합니다. 해는 9시가 넘어야 집니다. 야경 보려다 추위에 먼저 항복했습니다.
여행을 할 때는 마음을 좀 열고 다니니까 도시가 달리 보이더라고요. 런던은 음식이 100점짜리가 없는 도시라는 인상을 받았지만, 그 대신 무언가를 먹고 싶다는 욕구를 채워 주기엔 충분했습니다. 물가는 비싸고, 파운드는 강하고, 그래도 저는 또 오고 싶습니다. 한 달 살기를 진지하게 고민 중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