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 자유여행 (백야, 이즈마일로보, 북한식당, 붉은광장)
새벽 3시, 창밖이 환했습니다. 한국의 새벽 6시 느낌이랄까요. 모스크바의 백야를 처음 마주한 순간, 저는 솔직히 말해서 시차 적응 실패보다 이 광경에 더 멍했습니다. 9시에 잠들었다가 새벽 3시에 눈이 떠졌는데, 밖이 이렇게 밝을 수가 있나 싶었거든요. 이번 글은 그날 새벽부터 시작해서 이즈마일로보 시장, 북한 식당, 그리고 붉은 광장 야경까지 이어진 모스크바 하루를 그대로 옮긴 기록입니다.
백야현상으로 일찍 일어난 김에 이즈마일로보 시장 가기
솔직히 백야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갔습니다. 북위가 높은 지역에서 여름철 해가 지지 않거나 매우 짧게 지는 현상이라는 것 정도는요. 여기서 백야란, 위도가 높은 지역에서 여름에 태양이 지평선 아래로 내려가지 않거나 극히 짧은 시간만 내려가는 현상을 말합니다. 그런데 막상 새벽 3시에 눈 떴을 때 창문 너머가 그렇게 밝을 줄은 몰랐어요. 한국 시각으로는 아침 9시가 넘은 시간이라 저는 그냥 그 시간에 일어난 셈으로 치고 밀린 일을 처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아침 일찍 밖에 나가보니,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도 장점이더라고요.
이즈마일로보 시장은 주로 금·토·일 위주로 열리는 곳입니다. 여기서 이즈마일로보란, 모스크바 외곽에 위치한 대형 야외 벼룩시장 겸 전통 공예품 시장으로, 러시아 기념품을 구경하기에 가장 좋은 장소 중 하나로 꼽힙니다. 마침 오늘이 그날이었고, 저는 오전 8시 전에 시장 앞에 도착했습니다. 간판에 뭐라고 써 있었는데 처음엔 마이마이인 줄 알았는데, 모모라는 곳이었습니다. 러시아 현지인들이 아침·점심·저녁 다 해결하는 그야말로 국민 식당 같은 분위기였어요. (출처: TripAdvisor 이즈마일로보)
시장 안으로 들어가면 종류가 정말 많습니다. 제가 직접 눈으로 본 것들만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러시아 초콜렛: 겉보기엔 추억의 과자 같은데, 포장을 뜯으면 꽤 고급스러운 맛이 납니다. 고인돌 초콜렛이 그냥 고급 찐 초콜렛이 되는 느낌이랄까요.
- 절임류: 색색이 진열된 절임 반찬들이 예쁘다 못해 전시회 느낌이 날 정도였습니다.
- 마그넷·공예품: 러시아 특유의 키릴 문자와 건축 문양이 들어간 큼직한 마그넷들이 줄지어 있었습니다.
- 의류·빈티지 소품: 90년대 감성의 소품들도 있었는데, 거의 추억 회상 수준이었습니다.
저는 사진을 별로 안 찍는 편이었는데, 러시아에 오니까 색색의 건축물이 너무 이국적이어서 자꾸 셔터를 누르게 됐습니다. 이즈마일로보 시장은 그 쇼핑 충동과 기록 충동을 제대로 자극하는 공간이었어요.
북한 식당과 붉은 광장 야경 — 같은 날, 전혀 다른 두 경험
모스크바에서 북한이 운영하는 식당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실제로 검색해보면 현지 식당 순위 2~3위 안에 들 정도로 유명합니다. 촬영이 안 될 수도 있다는 얘기가 많았는데, 저는 운 좋게 입장까지는 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이 식당은 관광객들에게도 꽤 알려진 곳이지만 분위기 자체가 일반 식당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겁니다. (출처: Lonely Planet 모스크바)
나온 음식은 백김치, 닭고기 요리, 전, 밥. 한국인이 먹기에 딱 좋은 구성이었습니다. 맛은요? 솔직히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그냥 평이하겠지 했는데, 막상 먹어보니 아주 맛있더라고요. 배가 터질 것 같을 정도로 먹고 나왔는데, 양이 좀 많은 편이라 혼자 왔다면 두 가지는 과한 것 같습니다. 경비 면에서는 210루블 정도 나왔는데, 조금 비싼 편이긴 했습니다.
그리고 밤이 됐을 때, 버스를 타고 붉은 광장으로 향했습니다. 낮에 봤던 광장이랑은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어요. 야경을 보는 시간이 짧다는 게 오히려 그 순간을 더 소중하게 만들어줬습니다. 백야 때문에 어둠이 몇 시간밖에 안 되니까, 진짜 어두워진 붉은 광장은 더 특별하게 느껴졌거든요. 테트리스 성당이 조명을 받아 서 있는 모습을 한참 바라봤습니다. 세상에 나만 있는 기분이랄까. 혼자 온 여행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오히려 혼자라서 더 좋았습니다. 눈으로만 감상하면서 그 야경을 온전히 담을 수 있었으니까요.
러시아 여행 경비 후기
많은 분들이 러시아 여행 경비를 궁금해하시더라고요. 제가 직접 쓴 기준으로 말씀드리면, 2주 기준으로 한국에서 출발해서 약 80만원 내외를 예상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현지에서는 10만원도 안 썼고요. 숙소는 호스텔 기준으로 1~2만원대면 충분히 구할 수 있습니다. 교통은 300번 무료 패스권을 활용해서 버스와 지하철을 이동에 쓰고 있는데, 이게 굉장히 편리합니다. 여기서 300번 무료 패스권이란, 모스크바 대중교통을 일정 횟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교통 카드 혜택을 말합니다.
물론 음식이 막 저렴하진 않습니다. 동남아보다는 비싸고, 서유럽보다는 싼 수준이라 부담이 아예 없진 않아요. 하지만 한국인도 많지 않고, 그러다 보니 여행하면서 느끼는 이국적인 감성이 진짜로 느껴졌습니다. 이르쿠츠크나 상트페테르부르크도 선택지로 좋다고 하더라고요.
여행을 오면 일상의 복잡한 것들을 잠시나마 잊게 해준다고 해야 할까요. 저는 그 매력 때문에 자꾸 자유여행을 선택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밥이 맛없으면 고추장을 꺼내들고, 어두운 밤이 짧으면 그 짧음을 즐기면 됩니다. 모스크바는 그런 여행자의 태도를 받아줄 만큼 충분히 매력적인 도시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