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여행 현실 (델리,결항, 판공초)

해외여행 준비할 때 "그 나라 어때요?"라고 물어보면 열 명 중 여덟 명은 인도 얘기만 나오면 표정부터 달라지죠. 더럽다, 위험하다, 밥 먹고 탈난다. 저도 그 말들을 수없이 들었습니다. 근데 저는 그냥 갔어요. 괜히 출발하기 전부터 인터넷으로 자꾸 부정적인 후기들만 찾아보다보면 결국엔 포기하게될테니까 그냥 저질러버렸습니다. 그치만 자꾸 손발이 차가워지는건 어쩔수 없더라구요. 델리에서 레까지, 비행기 결항에 고산병까지. 제가 겪은 인도 여행의 민낯을 있는 그대로 풀어보겠습니다.


델리 첫날, 기대와 현실 사이

밤 12시에 델리 공항에 내렸습니다. 지하철도 버스도 이미 끊긴 시간이었어요.  밤에 무작정 흥정하면 바가지 쓰기 딱 좋거든요. 다행히 도와주는 기사를 만나서 8,700원짜리 프리페이드(pre-paid) 택시를 타고 숙소에 도착했습니다. 그날 숙소는 37,000원짜리였는데, 제 인도 여행 통틀어 제일 좋은 방이었어요. 들어가자마자 도마뱀부터 확인했고, 없는 것도 확인했습니다. 인도 여행자들 사이에서 이건 국룰입니다.

다음 날 아침, 숙소를 나서자마자 델리가 달라 보였어요. 시끄러운 건 맞는데 마음이 편해지는 이상한 도시입니다. 길거리에서 30루피짜리 사과 두 개를 샀고, 라임주스를 170원짜리 현지 빵이랑 같이 먹었습니다. 인터넷이 안 되는 게 문제였어요. 유심을 아직 못 샀거든요. 지도도 없이 메인로드를 찾아 걸어다니다 보면 길 한복판 야외 병원이 나오고, 유심 파는 아저씨를 따라가면 지하철을 타게 됩니다. 델리는 그런 곳이에요.

두 번째 숙소는 첫 번째 숙소 반값이었는데, 반값인 이유가 있었습니다. 이불이 깨끗하지 않았고, 찬물밖에 안 나왔어요. 거기에 호텔 매니저가 문을 계속 두드리면서 기차 티켓이며 투어를 자기한테 맡기라고 했는데, 심지어 맥도날드까지 따라왔습니다. 그건 좀 너무했어요. 인도 여행자 거리에서는 호객행위가 거의 일상입니다. 인도 밤길이 아직 무서워서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맥도날드에서 음식을 포장해서  저녁을 때웠습니다.

  • 프리페이드 택시: 공항에서 미리 요금 확정 후 탑승, 심야에 특히 유용
  • 유심 구매: 도착 다음날 현지인 도움 받아 구매, 없으면 길 찾기 불가
  • 숙소 선택: 37,000원짜리와 반값짜리 퀄리티 차이가 꽤 큼, 더운 물 여부 반드시 확인
  • 현지 음식: 도사(얇고 큰 빵에 커리) 맛집은 줄 서있는 곳이 정답, 170원짜리 빵도 갓 구운 건 맛있음
요약: 델리 첫날은 심야 도착부터 숙소 도마뱀 체크까지, 준비보다 현장 대응이 훨씬 중요합니다.

결항이 준 선물, 예상 밖의 델리 하루

델리에서 레로 가는 비행기를 타는 날이었습니다. 공항 라운지에서 1시간 반 연착 안내를 받았는데, 이건 시작이었어요. 그다음엔 3시간 추가 연착, 그리고 결항 가능성. 줄줄이 취소되는 게 눈앞에서 보이는데도 인도 사람들은 세상 차분했어요. 한국이었으면 벌써 난리가 났을 텐데. 저도 그냥 같이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공항 급식소에서 카레 받아 먹고, 6,000원짜리 피자 득템하면서요.

결국 환불 처리하고 공항을 나왔습니다. 완전히 망한 하루처럼 보였는데, 5일 만에 처음으로 해가 떴어요. 델리에 있는 내내 비였거든요. 그래서 원래 가보고 싶었던 유적지에 갔습니다. 외국인은 600루피, 현지인은 40루피. 입장료 차이가 15배예요. 이건 인도 관광지에서 흔한 외국인 이중 요금제입니다. 그래도 맑은 날 가보고 싶었던 풍경을 보니까 "결항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진짜로요.

야간 버스를 타고 다람살라 쪽 맥간이라는 도시로 이동했는데, 고속도로 한복판에서 버스가 퍼졌어요. 볼보 버스인데도 버스가 그냥 멈췄습니다. 아무 답도 없이 그냥 기다리는 수밖에요. 14시간 걸려서 도착했고, 죽는 줄 알았습니다.

맥간에서는 숙소 주인이 배낭을 보더니 그냥 공짜로 재워준다고 했습니다. 테라스 있는 괜찮은 방이었어요. 인도 여행 중 이런 순간이 오면 얼마나 행복한지 설명이 안 됩니다. 빨래를 처음으로 말렸고, 수제비 비슷한 팀뚝 요리를 먹었어요. 맥간 후기가 별로 없어서 기대를 안 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좋은 곳이었습니다. 뷰 맛집 카페가 1,000원인데 아무도 없는 곳이었어요. (출처: Lonely Planet 맥간 가이드)

요약: 결항은 최악처럼 보였지만, 덕분에 맑은 델리와 맥간이라는 예상 밖 장소를 얻었습니다.

고산병 현실, 판공초까지 가는 길

비행기로 1시간이면 갈 거리를 결항 때문에 버스와 택시로 거의 50시간 걸려서 갔습니다. 맥간에서 마날리, 마날리에서 레까지. 레는 해발 약 3,500m 지점입니다. 히말라야도 다녀왔는데 이 정도 고산병은 없었거든요. 근데 레 가는 길은 달랐어요. 눈이 잘 안 보이고, 귀가 먹먹하고, 속이 안 좋고, 어질어질하고. 종합세트로 한꺼번에 왔습니다.

레에 도착한 첫날은 거의 12시간을 잤어요. 저녁도 못 먹고 그냥 쓰러졌습니다. 고산병을 해결하는 방법이 사실 자는 것 말고는 없더라고요. 약도 사서 먹었는데, 안 먹고는 버틸 수가 없었습니다. 웬만하면 약을 안 먹으려고 했는데 포기했어요. 다음 날 일어나서 수제비 비슷한 팀뚝을 먹으니까 고산병이 사라지는 기분이었습니다. 배가 고프면 아무것도 안 되거든요.

레에서는 판공초 1박 2일 투어를 했습니다. 판공초란, 레에서 약 5시간 거리의 해발 4,350m에 위치한 호수로, 인도와 중국 국경지대에 걸쳐있는 곳입니다. 한국 분들이 "얼어 죽는다, 패딩 무조건 챙겨라"고 했는데, 생각보다 그렇게 춥지 않았어요. 슬리퍼 신고 눈밭에 서있었는데 괜찮았습니다. 그 물이 진짜 깨끗했어요. 인도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게 안 믿길 정도로요. (출처: Incredible India 판공초 공식 안내) 레 물가는 싸지 않습니다. 외국인 요금이 현지인의 몇 배인 경우도 있고, 택시도 많이 부릅니다. 삼겹살 2인분이 35,000원이었는데, 먹고 싶어서 먹었어요. 가격 생각할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 고산병 대비: 레 도착 직후 무리하지 말고 무조건 쉬어야 함, 약 구매 필수
  • 판공초 투어: 1박 2일 기준, 인도 현지인 팀 합류 가능, 슬리퍼보다 방한 신발 권장
  • 레 물가: 생각보다 싸지 않음, 외국인 요금 이중 책정 사례 많음
  • 숙소 선택 기준: 뜨거운 물 여부가 최우선, 더럽거나 와이파이 없는 건 참아도 됨
요약: 레는 고산병이 현실이고 물가도 만만치 않지만, 판공초 한 곳만으로도 올 이유가 충분합니다.

인도 여행이 빡세다는 건 맞는 말입니다. 근데 인도를 가봐야 하는 이유도 그 빡셈 안에 있어요. 비행기가 결항되고, 버스가 고속도로에서 퍼지고, 고산병이 종합세트로 오는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흘러가더라고요. 인도 사람들이 그 모든 상황에서 차분한 이유를 처음엔 몰랐는데, 2주 지나고 나서는 조금 알 것 같았습니다. 될 대로 되라는 게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그냥 받아들이는 거였어요. 인생이 루즈해질 때쯤 인도를 한 번씩 가게 되는 이유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