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얼빈 3박4일 (꿔바로우, 야시장, 안중근기념관)

솔직히 내가 생각해도 이건 너무 충동적으로 실행한 여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전날 밤새 야간근무를 하고 다음날 아침에 퇴근하고 잠깐 쉬다가, 그대로 대충 짐을 싸서 캐리어 끌고 공항으로 직행해서 하얼빈행 비행기에 탔습니다. 수면부족으로 두통까지 있었는데도 설레는 마음이 더 컸던 건, 아마 하얼빈이라는 도시 자체가 주는 기대감 때문이었을 겁니다. 러시아 문화의 흔적이 남아 있고, 맛집이 많고, 역사적으로도 의미가 깊다는 것. 그 세 가지가 머릿속에 맴돌았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가보니 그 세 가지 모두 예상을 훌쩍 넘었습니다.


하얼빈을 선택한 이유 — 러시아 문화가 스며든 중국 도시

하얼빈은 제가 중국 도시 중에서 처음으로 "여기, 중국 맞아?" 싶었던 곳입니다. 중앙대가를 걷다 보면 간판부터 건물 외관까지 러시아풍 양식이 가득합니다. 여기서 중앙대가란 하얼빈의 대표 번화가로, 우리나라의 명동 정도 규모라고 보시면 됩니다. 쇼핑도 되고, 길거리 음식도 있고, 사람들이 그냥 걷는 것 자체를 즐기는 공간입니다.

하얼빈이 이렇게 러시아 색채가 짙은 이유는, 과거 이 지역에 러시아 이주민들이 대거 정착했기 때문입니다. 그 흔적이 건물 양식으로 남아 있고, 성 소피아 성당이 그 상징입니다. 낮에 봤을 때도 분위기가 있었는데, 밤에 조명이 켜지면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저는 낮에 한 번, 밤에 한 번 총 두 번 다 갔습니다. 그리고 두 번 다 갈 만한 곳이었습니다.

겨울에는 영하 20~25도까지 내려가는 도시답게, 9~10월 초가을에도 아침저녁으로 꽤 쌀쌀합니다. 제가 반팔로 나갔다가 새벽 시장에서 속절없이 떨었습니다. 긴팔 한 벌은 필수입니다. 이건 진심을 담은 충고입니다.

  • 중앙대가 거리: 하얼빈 최대 번화가. 쇼핑, 길거리 음식, 마디얼 아이스크림(1906년 전통, 5위안) 등이 몰려 있습니다.
  • 성 소피아 성당: 하얼빈 최대 랜드마크. 낮보다 밤 조명이 훨씬 아름다우며, 낮밤 두 번 방문을 권합니다.
  • 중화 바로크 거리: 중앙대가 거리 다음으로 사람이 많이 모이는 거리. 마트로시카 동상 등 러시아풍 소품이 많고, 야시장 분위기가 납니다.
  • 극락사(금락사): 도심 한복판에 위치한 사원. 입장료 10위안. 러시아풍 건물들 사이에서 느끼는 동양적 고요함이 묘하게 위안이 됩니다.
요약: 하얼빈은 러시아 문화가 스며든 독특한 중국 도시로, 낮과 밤의 풍경이 각각 다른 매력을 지닙니다.

꿔바로우부터 튀긴 족발까지 하얼빈 음식

직접 겪어보니, 중국 음식이 "생각보다 잘한다"는 말이 하얼빈에서는 "생각보다" 수식어가 필요 없었습니다. 그냥 잘합니다. 메인 메뉴 두 개에 맥주까지 시켜서 17,000원이 나왔던 라오추지아 식당부터, 4,000원대 마라탕, 700원도 안 되는 꽈배기와 두유까지 — 가격 대비 퀄리티가 한국 기준으로는 비현실적인 수준입니다.

여기서 꿔바로우란, 하얼빈 지역에서 유래한 음식으로 중국식으로 변형된 돈가스라고 보시면 됩니다. 하얼빈에 외국인과 군인이 많이 드나들던 시절, 서양식 커틀렛 요리에서 영감을 받아 어느 요리사가 개발했다고 전해집니다. 중국 당면에 땅콩 소스, 야채를 잔뜩 넣어 비벼 먹는 냉채 스타일의 량피는 면보다 야채가 더 많고, 씹는 느낌이 마라탕에 들어가는 당면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한국에서 먹는 당면처럼 이빨로 끊어야 하는 게 아니라, 흰 묵처럼 입에서 바로 씹히는 부드러운 식감입니다.

야시장에서 먹은 카우주티(튀긴 족발)는 줄이 엄청 길었습니다. 사람들이 기다리는 이유가 있었는데, 단어 하나로 설명하면 "쫀득함"입니다. 오향맛과 마라맛 중 선택할 수 있고, 가격은 19위안(한화 약 3,700원)입니다. 그리고 새벽 시장에서 먹은 '요우띠아오'는 일종의 꽈배기 튀김으로, 뜨거운 두유(또우장)에 찍어 먹거나 빨대를 꽂아 마시는 것이 현지식 아침 문화입니다. 엄청 달 줄 알았는데 두유가 거품처럼 녹고 꽈배기는 갓 튀겨 따뜻했습니다. 두 개 합쳐서 700원이 채 안 됩니다.

루이싱 커피의 코코넛 커피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베트남식 코코넛 커피가 스무디 느낌이라면, 루이싱 커피의 코코넛 커피는 커피 자체의 풍미가 살아 있는 느낌입니다. 앱으로만 주문이 가능해서 처음엔 당황스러웠지만, 한번 익히고 나면 그냥 계속 시키게 됩니다. (출처: 루이싱 커피 공식 사이트)

요약: 꿔바로우, 튀긴 족발, 마라탕, 새벽 시장 두유와 꽈배기까지 — 하얼빈의 음식은 가격과 퀄리티 모두 기대 이상입니다.

안중근 의사 기념관 — 하얼빈에서 가장 먹먹했던 시간

솔직히 말하면, 하얼빈 여행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맛집도, 성 소피아 성당도 아니었습니다. 안중근 의사 기념관이었습니다. 월요일이 휴관이라 일정을 급하게 앞당겨 택시를 탔고, 여권을 지참하면 무료입장이 가능합니다.

여기서 안중근 의사 기념관이란, 1909년 이토 히로부미 저격이 실제로 일어난 하얼빈역 인근에 위치한 역사 기념 시설입니다. 저격이 실제로 일어났던 하얼빈역 현장도 직접 볼 수 있는데, 안중근 의사가 서 있던 위치와 이토 히로부미가 걸어나온 지점 사이가 생각보다 훨씬 가까웠습니다. 그 거리를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 그 결단이 얼마나 단단했던 건지 새삼 실감했습니다. (출처: 한국관광공사)

옥중에서 쓴 편지 앞에서 한참 서 있었습니다. 31살. 지금 제 나이와 거의 같습니다. 그 나이에 죽음을 그렇게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국권이 회복되면 고국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는데 — 그 유해가 지금도 발견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계속 머릿속에 남습니다. 제 기준에서는 나이로 치면 저보다 어리지만, 어떤 면에서 훨씬 더 어른이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예상 밖이었던 건, 한국인 관람객보다 중국인 관람객이 적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외국 땅에서 자국의 역사를 이렇게 돌아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중국인들도 이 역사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이 묘하게 위안이 되었습니다. 올해가 광복 80주년인 만큼, 하얼빈을 여행할 계획이 있다면 이곳만큼은 반드시 들르시길 권합니다.

요약: 안중근 의사 기념관은 여권 지참 시 무료입장이며, 월요일 휴관입니다. 하얼빈 여행에서 빼놓아서는 안 되는 곳입니다.

3박 4일 하얼빈 여행을 마치고 짐을 꾸리면서 든 생각은, 이 도시는 한 가지 색깔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러시아풍 건물 사이를 걷다가 중국 사원의 고요함에 잠기고, 꽈배기 하나로 새벽 시장의 활기를 온몸으로 느끼다가, 기념관 앞에서 숙연해지는 — 이 모든 게 3박 4일 안에 다 들어 있었습니다. 숙박비 하루 3만 원대 호텔에서 시작한 여행치고는, 남은 것들이 꽤 묵직합니다. 겨울 시즌에 한 번 더 와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초가을에도 성 소피아 성당 앞에서 살짝 눈물이 차오르는 감성이 올라오는데, 눈 쌓인 겨울이라면 그 감성이 두세 배는 더 올라올 것 같아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