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드 캐니언 트레일(국립공원숙소, 와우포인트, 트레킹코스)
그랜드 캐니언 일출을 보러 새벽에 억지로 눈을 뜬 적 있으신가요? 저는 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하품이 안 나오질 않았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다들 감동받은 표정을 짓고 있는데, 저는 속으로 '이거 집 앞에서 뜨는 해랑 뭐가 다른 거지?'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해는 저쪽에 있고, 뭔가 대단한 게 보이지 않고, 그냥 밝아오는 하늘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트레일에 발을 들이는 순간,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70만 원을 쓰고 뷰포인트만 찍다 돌아갔다면 정말 후회했을 것 같습니다.
70만원짜리 국립공원 숙소, 별이 값을 했습니다
그랜드 캐니언 여행을 준비하다 보면 숙소 가격에서 한 번 멈칫하게 됩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1박에 70만 원이라는 금액을 보고 손이 바들바들 떨렸는데, 결국 캐니언 안쪽 로지를 예약했습니다. 여기서 로지란, 국립공원 내부에 위치한 오두막형 숙박 시설로, 공원 밖 호텔처럼 편의 시설이 갖춰져 있지는 않지만 자연 한가운데에 있다는 것 자체가 이 숙소의 존재 이유입니다.
솔직히 체크인 당시에는 '이걸 70만 원 주고 자야 한다고?'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편했을 리가 없고, 호텔급 서비스는 기대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저녁에 로지 앞에서 맥주 한 캔을 들고 하늘을 올려다보는 순간, 그 돈이 어디에 쓰인 건지 확실하게 느꼈습니다. 빛 공해가 없는 캐니언 안쪽에서 보는 별은 차원이 달랐습니다. 전날 트레킹에 완전히 탈진해서 맥주 먹고 그대로 기절했는데, 그 별 보던 순간만큼은 멍하니 한참을 있었습니다. 이 여행 전체를 통틀어 가장 좋았던 순간이 어디냐고 물어봤을 때, 동행도 저도 망설임 없이 그 장면을 꼽았습니다.
반면 뷰포인트를 버스 타고 돌아다니며 사진 찍던 시간은 솔직히 재미없었습니다. 어디선가 한 번쯤 본 풍경이 실물로 보인다는 것 이상의 감흥이 없었습니다. 같은 돈과 시간이라면 트레일트래킹에 더 많이 투자하는 쪽이 훨씬 낫습니다.
- 숙소 위치: 그랜드 캐니언 국립공원 내부 로지. 공원 밖에서 차로 이동할 필요 없이 트레일 입구까지 도보 이동 가능합니다.
- 가격: 저희가 묵었을 때 1박 약 70만 원 수준이었습니다. 성수기·비성수기, 객실 타입에 따라 달라집니다.
- 실제로 좋았던 것: 별 관측, 트레일 접근성, 산장 특유의 분위기.
- 아쉬웠던 것: 편의 시설 부족, 일반 호텔 수준의 쾌적함은 기대 불가.
와우 포인트, 이름이 설명입니다
트레일에 들어서기 전에 아침을 못 먹은 상태였습니다. 배가 고프니까 다리에 힘이 안 들어오는 게 바로 느껴졌습니다. 다행히 트레일 입구 근처 로지에서 아침을 먹을 수 있었는데, 베지테리안 부리토와 소시지 부리토를 시켜서 그랜드 캐니언을 배경으로 먹었습니다. 이게 그냥 부리토가 아니었습니다. 그 풍경을 배경으로 먹는 따뜻한 브리또 한 개가 '이제 좀 걸어볼 의지가 생겼어'라는 말이 절로 나올 만큼 회복감을 줬습니다.
경고판이 입구에 세워져 있었습니다. 마실 것과 먹을 것을 충분히 챙기라는 내용이었고, 코스별로 Difficult, Very Difficult 등급이 표시되어 있었습니다. 여기서 트레킹 코스란, 그랜드 캐니언 내부로 내려가는 다양한 난이도의 하이킹 루트를 말하는데, 저희는 그 중에서 로어 터널(Lower Tunnel)을 목표 지점으로 삼았습니다. 왕복 약 1시간 코스였고, 그 정도면 충분히 본전을 뽑는 거리라는 판단이었습니다.
내려가는 길이 무서웠습니다. 한쪽은 절벽이고 길은 생각보다 좁았습니다. '그냥 죽는 거야, 여기서 떨어지면'이라는 말이 반쯤 농담, 반쯤 진심으로 나왔습니다. 그렇게 긴장하면서 걷다가 어느 지점에서 멈추게 되었는데, 그게 바로 와우 포인트였습니다. 여기서 와우 포인트(Ooh Aah Point)란, 브라이트 엔젤 트레일 초입 구간에 위치한 전망 포인트로, 이름 그대로 도착하는 순간 저절로 탄성이 나와서 붙은 이름입니다. 저도 예외 없이 "와우"가 나왔습니다. 설명이 필요 없었습니다.
트레일 중간에 날다람쥐가 툭 튀어나오기도 했고, 헬기가 뜨는 걸 봤을 때는 '우리가 조금만 더 걸어갔으면 저 자리에 있었겠다'는 말이 나왔습니다. 트레킹 욕심을 부리다 사고가 많이 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자기 수준을 정확히 아는 것이 그 어떤 장비나 정보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이 트레일에서 몸으로 배웠습니다. 저희는 저희 수준을 너무 잘 알고 있었고, 그래서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랜드 캐니언 트레일 관련 공식 정보는 국립공원관리청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출처: 미국 국립공원관리청(NPS)).
트레킹 코스, 욕심 버리면 정말 재밌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결산을 했습니다. 뷰포인트 버스 투어는 재미없었고, 트레일은 재밌었다는 결론이었습니다. 이게 저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었습니다. 동행도 같은 말을 했습니다. 차라리 트레일이 훨씬 낫다고. 체력이 된다면 와우 포인트를 넘어서 더 내려갔다 오면 진짜 잊지 못할 경험이 될 것 같다는 이야기도 나눴습니다.
입구 경고판에 적힌 것처럼 물과 음식은 반드시 챙겨야 합니다. 내려가는 쪽에는 보급 포인트가 없습니다. 저희는 아침을 늦게 먹은 덕분에 어느 정도 버텼지만, 만약 공복 상태로 트레일에 들어섰다면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이 진심으로 체감됐을 것입니다. 실제로 트레일 시작 전 로지 카페에서 따뜻한 부리토 하나를 먹고 나서야 '의지가 생겼다'는 말이 나왔으니까요.
그랜드 캐니언 안쪽 숙소에서 트레일을 걷고, 저녁에 맥주 마시며 별을 보는 것. 이 순서로 경험하는 것이 저는 가장 이상적인 그랜드 캐니언 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뷰포인트 셔틀 버스를 타고 사진만 찍다 오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여행이 됩니다. 퇴실하면서 '살면서 잊지 못할 경험'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왔습니다. 70만 원이 아깝지 않았습니다.
트레킹을 마치고 차에 올라탔을 때 "성공했다"는 말이 저절로 나왔습니다. 대단한 코스를 완주한 것도 아닌데, 그랜드 캐니언을 걸었다는 사실 자체가 뿌듯했습니다. 원 없이 봤다는 말도 나왔습니다. 뷰포인트에서는 그 말이 안 나왔는데, 트레일에서는 나왔습니다. 그게 차이입니다. 그랜드 캐니언을 계획하고 있다면, 숙소 비용이 부담스럽더라도 공원 안쪽에서 하룻밤을 묵으면서 트레일을 한 번만 걸어보시길 권합니다. 가장 현실적인 목표 지점은 와우 포인트, 왕복 한 시간이면 충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