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폴 여행 절약법 (조호바루, 이지링크카드, 말라카)
싱가포르 여행을 앞두고 숙박 검색을 해보셨다면 아마 한 번쯤은 이런 화면 앞에서 멈췄을 겁니다. 괜찮아 보이는 숙소인데 1박에 30만 원, 40만 원. 손가락이 멈추는 그 순간. 저도 똑같았습니다. 발리 공항에서 싱가포르행 비행기를 기다리면서 숙박 앱을 열었다가 그냥 덮어버렸습니다. 싱가포르에서 자는 건 포기하기로 했습니다. 대신 다른 방법을 찾았고, 그 방법이 생각보다 훨씬 많은 것을 경험하게 해줬습니다.
조호바루를 베이스캠프로 삼은 이유
싱가포르 숙박비 문제를 해결한 방법은 간단했습니다. 말레이시아 최남단 도시인 조호바루에 숙소를 잡고, 거기서 싱가포르를 당일치기로 드나드는 것입니다. 여기서 조호바루란, 싱가포르와 다리 하나로 연결된 말레이시아 도시로, 두 나라 사이를 매일 출퇴근하는 현지인들이 있을 만큼 지리적으로 가까운 곳입니다. 실제로 저희가 국경을 넘으면서 보니, 퇴근 시간대 입국심사 대기 줄이 어마어마하게 길었습니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입국심사를 받으며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게 처음엔 믿기지 않았습니다.
싱가포르에서 컨디션 좋은 숙소를 잡으려면 최소 30만 원에서 40만 원은 줘야 한다는 걸 검색하면서 확인했습니다. 저희가 실제로 머문 말레이시아 숙소는 주방, 세탁기, 안방, 샤워실을 갖춘 아파트형이었고, 창밖으로는 강 건너편에 싱가포르 스카이라인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건물 아래엔 수영장도 있었습니다. 싱가포르에서 30만 원짜리 방 한 칸을 포기한 대신, 강 건너 싱가포르를 바라보며 수영장 딸린 아파트에서 묵은 셈입니다.
하루에 국경을 두 번 넘는다는 게 처음엔 막막하게 느껴졌습니다. 복제인간이 되어서 갈아 끼워지는 느낌이라고 제가 직접 그 느낌을 표현했는데, 솔직히 오늘 투 머치 힘들다는 생각이 드는 건 사실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해보니 루트 자체는 단순합니다.
- 조호바루 숙소 출발: 숙소에서 버스 또는 도보로 말레이시아-싱가포르 국경 이동
- 말레이시아 출국심사: 여권 제출 후 통과
- 버스 탑승: 국경 버스로 약 1~2분, 싱가포르 입국
- 싱가포르 입국심사: 완료 후 MRT로 환승하여 시내 이동
- 주의: 퇴근 시간대(저녁)는 입국심사 대기가 극심하므로 절대 이 시간은 피할 것
이지링크카드 없으면 지하철 못 탑니다
싱가포르 MRT를 타려고 한국 신용카드를 단말기에 찍었더니 그냥 안 됐습니다. 미리 한국 신용카드로 교통 결제가 된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었고 저도 기대를 했는데, 실제로는 안 됐습니다. 당황한 채로 서비스센터 데스크를 찾아가야 했습니다. 여기서 EZ-Link카드란, 싱가포르의 대중교통 전용 선불 교통카드로 한국의 티머니와 같은 개념입니다. 이게 없으면 MRT를 탈 수 없습니다.
저희는 공항 서비스센터에서 EZ-Link카드를 2장 구매했고, 총 한화로 약 25,000원 정도를 썼습니다. 카드 자체 가격이 약 5,000원이고 나머지는 충전 금액입니다. 한 가지 알아두실 것은, 공항 말고 클룩 같은 곳에서 사면 더 싸다는 이야기를 현지에서 들었다는 점입니다. 다만 공항 도착 직후에 바로 이동해야 한다면 공항에서 구매하는 것이 현실적이고, 클룩에서 구매할경우 카드에 충전금액이 없기때문에 제 경험상 공항에서 구매하는 게 이득입니다.
카드를 손에 넣고 나서 지하철을 탔을 때, 지하철 자체는 한국 지하철이랑 정말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좌석에 앉은 현지인들은 핸드폰을 보거나 눈을 감고 있었고, 저는 그 익숙한 풍경이 낯선 나라에서 다 새롭게 느껴진다는 게 이상하기도 하고 재밌기도 했습니다. 매일 반복되는 이 장면들이 저에게는 하나하나 다 새로움이었으니까요. 여행의 맛은 그런 데 있는 것 같습니다. (출처: TransitLink 공식 사이트)
말라카에서 미각을 되찾았습니다
사실 저는 이 여행 내내 몸 상태가 좋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조호바루에서 버스를 타고 약 3시간 반을 이동해 말라카에 도착했습니다. 말라카는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이 차례로 식민 지배를 했던 도시로, 그 흔적이 거리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네덜란드 광장이 있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거리가 있으며, 중국계 이민자인 화교와 말레이 현지인이 결혼해 만들어진 바바 뇨냐 문화가 지금도 살아있는 동네입니다. 걷다 보면 어딘가 군산의 근대문화거리 느낌도 나고, 중국 거리에 온 것 같기도 하고, 유럽 느낌도 납니다. 정체가 뭔지 딱 잘라 말할 수 없는 도시였습니다.
맛집 투어를 제대로 즐길 컨디션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먹었습니다. 나시 르막, 크랩, 바바 뇨냐 음식들을 하나씩 시켜봤습니다. 크랩 코스를 먹었을 때 총 금액이 약 10만 원 정도 나왔는데, 싱가포르에서 같은 음식을 먹었다면 7~8만 원은 거뜬히 넘었을 거라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미각 없는 입으로 먹는데, 마늘이랑 간장 향이랑 신선함이 느껴졌습니다. 쫄깃한 감촉도 느껴졌습니다. 미각이 완전히 돌아온 건 아니었지만, 아, 내가 아직 맛을 조금은 느끼는구나 하는 걸 이 식탁에서 확인했습니다. 말라카 버스 요금은 약 6,000원 수준이었고, 그 6,000원짜리 버스를 타고 찾아간 곳에서 이런 경험을 했습니다.
- 말라카 이동: 조호바루 터미널에서 버스로 약 3시간 반, 요금 약 6,000원
- 바바 뇨냐 문화: 중국계 화교 남성과 말레이 여성의 결합으로 생겨난 독자적 혼합 문화, 음식과 건축 양식 모두에 남아있음
- 크랩 식사: 말라카 현지 식당에서 약 10만 원, 싱가포르 대비 저렴한 편
- 야시장: 금·토·일 운영, 체력이 받쳐준다면 저녁에 들를 것을 권장
- 유람선: 강변을 따라 운행, 낮보다 저녁 탑승 추천
싱가포르 여행을 포기하지 않아도 됩니다. 숙박을 말레이시아로 옮기면 됩니다. 국경을 하루에 두 번 넘는 게 체력적으로 만만치 않은 건 사실이고, 퇴근 시간 입국심사 줄 앞에 서면 진심으로 후회되는 순간도 옵니다. 그런데 그 불편함을 감수하고 나면, 싱가포르의 야경도 보고, 조호바루 아파트 창밖으로 싱가포르 스카이라인도 보고, 말라카 거리에서 뭔지 모를 문화들이 뒤섞인 골목도 걸어볼 수 있습니다. 체력이 바닥난 상태에서도 맛을 조금씩 되찾아가며 먹었던 그 크랩의 마늘 향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여행은 결국 그런 디테일들로 채워지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