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출발 크루즈 여행기 (뷔페, 사세보, 가고시마)
해외여행을 꽤 많이 다닌 분들도 크루즈 여행 앞에서는 한 번쯤 멈칫하게 됩니다. "그거 너무 패키지 아니야?", "배 안에 갇혀 있는 거 아냐?" 저도 그랬습니다. 세계 여행을 하면서 각종 항구에 정박해 있는 크루즈를 볼 때마다 "저 내부는 어떻게 생겼을까" 하는 궁금증이 계속 쌓였거든요. 그러다 이번에 부산에서 출발해서 일본 사세보와 가고시마를 거쳐 돌아오는 4박 5일 크루즈를 직접 타봤는데, 솔직히 말씀드리면 생각보다 훨씬 괜찮았고, 또 생각보다 불편한 것도 있었습니다.
크루즈 탑승 첫날, 뷔페와 발코니 객실 사이에서
부산 국제여객터미널에 도착했을 때의 첫 느낌은 솔직히 수학여행 같았습니다. 서류 작업을 마치고 수속을 기다리는데, 저도 모르게 "나 지금 패키지 여행 온 거 아니야?" 싶은 기분이 들더라고요. 자유여행만 고집해온 사람 입장에서는 어느 정도 낯선 감각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배에 올라가 보니 이야기가 달랐습니다. 2,000명이 넘게 탑승하는 이 배는, 영상으로 보면 잘 모르겠지만 실제로는 정말 컸습니다. 12층까지 있고, 여기서 7층이 저희 객실 층이었는데 "아파트 한 채가 옆으로 누워서 움직이는 것 같다"는 표현이 딱 맞았습니다.
저희 객실은 발코니 룸이었습니다. 여기서 발코니 룸이란, 일반 내부 객실과 달리 문을 열면 바다가 바로 보이는 야외 공간이 딸린 객실을 말합니다. 둘이 앉아서 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구조인데, 저는 개인적으로 이게 크루즈 여행의 핵심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비가 와도, 배가 움직여도, 테라스에 나가면 그냥 평온해집니다.
음식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는데요. 크루즈 요금에 식사 일체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뷔페 식당이 한 군데, 코스 요리가 나오는 정찬 레스토랑이 두 군데 있었습니다. 저녁은 정찬 레스토랑을 이용했는데, 자리에 앉아 있으면 코스 요리처럼 순서대로 가져다줍니다. 주류는 별도 구매입니다. 그래서 "맥주는 일본 가서 먹자"는 판단이 자연스럽게 나왔습니다. 참고로 점심과 저녁 사이에 야식 코너도 열렸는데,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헬스장 가려다가 야식 코너에 붙잡힌 기억이 납니다.
- 뷔페 식당: 조식·중식 포함, 오션뷰가 기본 제공됩니다. 카페 찾아갈 필요가 없습니다.
- 정찬 레스토랑: 저녁 코스 요리, 메뉴판에서 코스 순서별로 선택하는 방식입니다.
- 야식 코너: 별도 운영, 심야에도 이용 가능합니다.
- 주류: 요금에 미포함, 개별 구매 필수입니다.
- 헬스장·쇼: 헬스장은 층별로 구비, 선상 공연은 하루 두세 차례 열렸습니다.
크루즈 여행에서 한 가지 놓치기 쉬운 게 있는데, 바다 위에 떠 있는 동안은 인터넷이 기본 안 됩니다. 여기서 해상 인터넷이란, 위성 통신 기반으로 제공되는 유료 서비스를 말합니다. 가격이 꽤 비싼 편이라 저희는 일본 기항지에서 스타벅스에 들러 넷플릭스 콘텐츠를 오프라인으로 미리 다운받는 방식으로 해결했습니다.
사세보 자유 여행, 셔틀과 생맥주와 모금 활동하는 야구부
크루즈 여행을 패키지처럼 느껴지게 하는 게 투어 프로그램인데, 저희는 기항지에서 전부 자유 여행으로 움직였습니다. 이게 가능한 이유가 있었는데, 크루즈 측에서 자유 여행자를 위한 무료 셔틀을 시내까지 운영하기 때문입니다. 투어를 신청하지 않아도 탑승 가능합니다. 버스 카드를 사러 어딘가로 가야 하는 번거로움이 없었습니다. 미리 여행다녀왔던 분이 알려주시기 전까지는 몰랐던 정보라 더 반가웠습니다.
사세보는 나가사키현에 있는 도시인데, 미군 기지가 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미국 문화가 독특하게 발달해 있고, 일본 현지인들이 햄버거를 먹으러 일부러 사세보까지 온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평택 미군 기지 앞에서 햄버거 먹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라고 하더군요. 여기서 사세보 버거란, 이 지역 미군 문화에서 비롯된 수제 버거 스타일을 말하는데, 일본에서 꽤 유명한 음식 문화입니다. (출처: 일본관광국 JNTO)
비가 꽤 많이 왔는데, 다행히 일본에서 가장 긴 아케이드 상점가 안에서 대부분 시간을 보냈습니다. 비를 피하면서 쇼핑도 하고 식사도 할 수 있는 구조였습니다. 그 안에서 야구부로 보이는 학생들이 대회 모금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오네가이시마스(부탁드립니다)"를 진심이 담긴 표정으로 외치고 있었습니다. 남이 시켜서 하는 표정이 아니라는 게 딱 느껴졌습니다. 저는 5만원권밖에 없어서 잔돈을 못 줬는데, 돌아오는 길에 잔돈을 만들어야겠다 싶었습니다.
나마비루, 즉 생맥주와 회를 먹었는데 맥주는 솔직히 기대만큼은 아니었습니다. 그 양에 약 13,000원 정도라 가격 자체가 나쁜 건 아니었지만, 일본 생맥주가 늘 맛있다는 기대감이 너무 컸던 것 같습니다. 다만 사세보에서의 하루가 비 때문에 기대보다 제한적이었던 점은 사실입니다. 그래도 배로 왔기 때문에 오히려 나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호텔에 있었으면 호텔에만 있었을 거 아니에요"라는 말이 절로 나왔습니다.
가고시마에서, 화산이 보이는 호텔 카페와 크루즈가 집이 된 순간
3일차 목적지는 가고시마였습니다. 조식을 먹고 나니 12시였는데, 승선 마감까지 대략 6시간이 남아 있었습니다. 트램을 타고 시내로 이동했는데, 트램 기본요금이 약 1,700원 정도입니다. 택시를 타면 기본요금 수준에서 조금 더 나오는 거리임에도 만원이 넘게 나왔습니다. 일본 교통비가 전반적으로 비싸다는 걸 이때 체감했습니다. (출처: 가고시마시 관광정보)
가고시마 하면 사쿠라지마입니다. 여기서 사쿠라지마란, 가고시마 앞바다에 있는 활화산 섬으로, 실제로 하루에 한 번씩 분화가 일어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저희는 사쿠라지마가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호텔 카페를 찾아갔는데, 거기까지 가는 과정이 꽤 재미있었습니다. 트램을 타다가 일본어가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 "또일레와 어디 아리마스까" 식으로 화장실을 물어봤더니, 직원 분이 그냥 직접 데려다주셨습니다. 발음이 엉망이어도 진심이 통하는 게 여행의 묘미라는 걸 또 한 번 느꼈습니다.
그 호텔 카페에서 맥주를 마시며 사쿠라지마를 바라보는 순간이, 저에게는 이번 여행의 정점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여행하는 이유"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왔습니다. 카페 가격은 호텔 수준이고, 숙박비는 1박에 20만원 초반대로 보였습니다. 남산에 있는 하얏트 호텔 올라가는 느낌이랄까요, 가고시마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고 그 너머로 연기 피어오르는 화산이 있는 풍경은 솔직히 사진으로는 설명이 안 됩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멀리서 배를 발견했습니다. 도심의 아파트들 사이에서 엄청나게 긴 무언가가 옆으로 누워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게 저희 배였습니다. 신기한 건 그 순간 "집에 간다"는 느낌이 들었다는 겁니다. 4박 5일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배가 집이 됐습니다. 이게 크루즈 여행이 가진 독특한 감각인 것 같습니다. 어떤 분들은 "배 안에 갇히는 거 아니냐"고 하는데, 저는 이 감각이 오히려 여행에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크루즈 여행은 패키지냐 자유여행이냐로 딱 잘라 말하기 어렵습니다. 이동과 숙식이 묶여 있다는 점에서는 패키지와 비슷하고, 기항지에서 움직이는 방식은 완전한 자유 여행입니다. 저는 처음엔 "어느 정도 구속하는 여행"이라고 느꼈는데, 실제로 타보니 그 구속이 오히려 편했습니다. 어디서 자고 어디서 먹을지 고민할 에너지를 고스란히 여행지 경험에 쓸 수 있으니까요. 크루즈 여행에 대해 아직 망설이고 계신 분이라면, 한 번은 타볼 만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단, 배 위에서의 인터넷 준비와 기항지 셔틀 정보는 미리 확인하시는 게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