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한달살기 반전 (곱창 타코, 물가, 코요아칸)
솔직히 저는 멕시코시티에 온 지 2주 반이 지나도록 이 도시의 매력을 하나도 못 찾고 있었습니다. 예쁘다는 생각은 드는데 왜인지 흥이 안 나는 그 이상한 감각. "나랑 기운이 안 맞는 것 같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다 멕시코에서 석사 과정을 밟고 있는 한 한국인 분을 만났고, 그분이 딱 하루 가이드를 자청하셨습니다. 그 하루가 저를 완전히 뒤집어놨습니다.
코요아칸에서 시작된 아침 — 시장, 도서관, 그리고 첫 번째 균열
저희가 머물던 동네는 멕시코시티의 포유아칸, 혹은 코요아칸이라 불리는 곳입니다. 여기서 코요아칸이란 멕시코시티 남서쪽에 위치한 주거·문화 지구로, 한국으로 치면 인사동과 삼청동을 합쳐놓은 분위기입니다. 조용하고 나무가 울창하며, 멕시코의 국민 화가 프리다 칼로의 생가가 바로 이 동네에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생가 앞을 여러 번 지나치면서도 줄 서는 게 귀찮아 들어가본 적이 없었습니다.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냥 뭔가 다 귀찮던 시기였습니다.
가이드 첫 코스는 바스코데켈라스 도서관이었습니다. 여기서 바스코데켈라스 도서관이란 멕시코 교육에 큰 획을 그은 인물의 이름을 딴 도서관으로, 인터스텔라 영화 속 도서관 배경과 비슷하게 생겼다는 이유로 관광객들 사이에서 유명해진 곳입니다. 물론 영화 촬영지는 아닙니다. 저도 현장에서 정정을 받았습니다. 이 도서관의 가장 신기한 점은 전등이 없다는 것입니다. 건물 전체가 자연채광만으로 운영됩니다. 처음엔 불을 안 켠 줄 알았습니다. 위층 난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컨테이너 박스를 쌓아올린 것처럼 구획들이 이어지는데, 다리가 후들거릴 만큼 아찔합니다. 열람실 자리는 한국이었다면 오픈런 경쟁이 벌어졌을 텐데, 여기는 자리가 텅텅 비어 있었습니다. 땅이 넓으니 공간도 넓고, 공간이 넓으니 경쟁이 없다. 그 단순한 차이가 괜히 마음에 걸렸습니다.
지하철을 처음 탄 것도 그날이었습니다. 멕시코시티에 온 지 2주 반 만에 처음 탄 지하철. 요금은 인당 350원입니다. 메트로버스는 420원이었습니다. 생각보다 깨끗하고 배차도 촘촘했습니다. 이동할 때마다 그라보를 타거나 걸어다니기만 했던 저한테는 꽤 신선한 경험이었습니다.
- 코요아칸 시장: 관광객과 현지인이 반반 섞인 시장. 먹거리 코너에서 타코, 엔칠라다 등을 먹을 수 있습니다. 저는 큰 감흥을 못 느꼈는데, 관광지화가 많이 된 탓이 큽니다.
- 바스코데켈라스 도서관: 자연채광만 사용하는 특이한 구조. 전등이 없습니다. 입장료 없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 지하철·메트로버스: 각각 350원, 420원. 깨끗하고 자주 옵니다. 단, 여성 전용 칸이 따로 마련되어 있을 만큼 여성 대상 범죄가 사회적 문제로 거론되는 도시이기도 합니다.
멕시코시티 물가의 민낯 — 마트 장바구니부터 타코 한 개까지
멕시코에서 2주를 지내며 가장 놀란 것 중 하나가 물가였습니다. 저희는 거의 매일 월마트에서 장을 봤는데, 처음 마트에 들어갔을 때 숫자들을 보고 멍했던 기억이 납니다. 계란 18알에 4,000원. 소고기 100g에 1,400원. 바나나 1kg에 2,000원. 한국 장바구니 물가를 잊어버린 지 오래라 정확한 비교가 어렵지만, 분명히 체감상 저렴했습니다.
데킬라 가격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여기서 데킬라란 용설란(아가베)을 51% 이상 사용해 증류한 멕시코 고유의 증류주로, 아가베 함량이 100%인 제품이 이른바 진짜 데킬라로 통합니다. 마트에 가장 기본 제품이 한국보다 절반 가격 수준으로 줄지어 있었고, 고급 라인업도 수두룩했습니다. 저희는 종류별로 몇 가지 먹어봤습니다.
그리고 타코. 처음 멕시코에 왔을 때 가장 실망한 게 타코였습니다. 한국에서 먹던 건 전부 미국식 타코였고, 진짜 멕시코 타코는 바삭하지 않은 옥수수 또띠아에 흐물흐물한 재료를 올려 먹는 방식입니다. 처음엔 적응이 필요했는데, 지금은 오히려 그 담백한 맛에 익숙해졌습니다. 특히 저희 동네 곱창 타코집은 매일 먹었습니다. 한 개에 1,400원 정도. 이게 가이드 당일 넷플릭스 타코 크로니클스에 소개된 식당들과 비교해봐도 전혀 꿇리지 않았습니다.
숙소 비용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저희는 에어비앤비에서 처음 봤을 때 200만원짜리 매물이었는데, 집주인과 직접 연결이 되어 현금으로 다이렉트 계약하면서 130만원으로 낮췄습니다. 플랫폼 수수료가 빠지니 가능한 일이었고, 집주인 입장에서도 나쁘지 않은 거래였습니다. 에어비앤비 리스팅을 보다가 집주인 연락처가 있으면 직접 메시지를 보내보는 것, 한번 시도해볼 만합니다.
참고로 시장 야채가 마트보다 싸긴 합니다. 양파 기준으로 시장은 1kg에 15페소, 마트는 29페소였습니다. 하지만 언어가 전혀 안 통하는 상황에서 관광객 티를 내면 눈탱이를 맞을 수도 있어서, 저희는 조금 더 비싸더라도 그냥 마트를 택했습니다. 급한 사람이 우물을 판다고, 스페인어를 못하는 입장에서는 가격 흥정이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곱창타코 한 입에 멕시코가 뒤집혔다
센트로, 즉 멕시코시티의 구도심에 들어서자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가이드분이 처음 데려간 곳은 까르니타스 타코집이었습니다. 여기서 까르니타스란 돼지고기를 기름에 천천히 익혀 결을 살려낸 멕시코식 조리법으로, 족발과 흡사한 향과 질감을 냅니다. 살을 발라서 잘게 다진 뒤 또띠아 위에 올려주는데, 눈 감고 먹으면 한국 족발이라고 해도 믿을 뻔했습니다. 고기 맛이 아낌없이 풍성하게 나는 그 느낌.
그리고 곱창 타코. 저는 이미 동네 곱창 타코집에서 매일 먹고 있었지만, 그날 넷플릭스 타코 크로니클스에 나온 식당에서 먹은 것은 또 달랐습니다. 한국에서 정말 잘한다는 원조 곱창집 맛이 그대로였습니다. 소곱창을 바삭하게 구운 것이 또띠아 위에 듬뿍 올라가고, 초록 살사(초록 토마토와 고추, 아보카도)와 양파가 곁들여집니다. 그 조합이 느끼함을 잡아주면서 한 입에 다섯 조각이 들어가는 양감을 만들어냅니다. 가격은 한 개에 2,000원. 저는 그 자리에서 첫 번째 집을 잊을 수가 없어서 두 번째 식당을 둘러보고 다시 첫 번째로 돌아갔습니다.
멕시코 아저씨가 저희를 데려간 동네들은 차례로 이런 감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조명 가게가 줄지어 선 골목은 서울 종로, 낡고 오래된 가게들이 활기차게 돌아가는 거리는 을지로, 유럽풍 건물이 가로수 사이로 이어지는 로마 동네는 서래마을. 가이드분이 "멕시코는 사랑이다"를 계속 외쳤는데, 그 말이 가스라이팅이라고 웃으면서도 실제로 서서히 먹혀들어가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밤에는 뿔케를 마셨습니다. 여기서 뿔케란 용설란(아가베)의 수액을 발효시킨 전통 발효주로, 데킬라가 같은 식물을 증류해서 만드는 것과 구별됩니다. 맛은 쌀뜨물에 알로에를 탄 느낌이랄까요. 찐득하고 약간 새콤합니다. 100년 전통의 츄러스집에서 먹은 츄러스는 스페인에서 먹었던 것보다도 맛있었고, 메뚜기튀김은 향신료 덕분에 맥주 안주로 꽤 어울렸습니다.
하루가 끝날 무렵 저는 확실히 뭔가가 바뀌었다는 걸 알았습니다. 멕시코가 달라진 게 아니라, 제가 어떻게 보느냐가 달라진 것이었습니다. 뉴욕 이후로 생긴 마음가짐이 하나 있는데, 내가 몰라서 못 본 것들을 가지고 그 나라가 노잼이라고 낙인찍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멕시코에서 그 마음가짐이 처음으로 제대로 작동하는 날이었습니다.
멕시코시티에서 2주를 보내고도 매력을 못 찾겠다면, 그건 도시가 안 맞는 게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저처럼 동네에서만 조용히 지내고 있는 것일 수 있습니다. 코요아칸을 벗어나 지하철 350원을 내고 센트로로 나가보시길 권합니다. 넷플릭스 타코 크로니클스에 나온 곱창 타코집을 찾아가고, 길거리에서 말을 거는 현지인들 한 명쯤 제대로 붙잡아보시길 바랍니다. 멕시코는 사랑이라는 말, 저는 가스라이팅이라고 웃었지만 지금은 반쯤 믿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