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라이 2주 여행 (백색사원, 현지인시장, 야시장)

수박 한 통에 800원입니다. 처음 이 가격을 봤을 때 저는 핸드폰을 꺼내 들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치앙라이에서 2주를 보내면서 "어디에 얼마를 써야 하는가"에 대한 제 기준이 완전히 뒤집혔습니다. 잘 쓰면 천국이고, 잘못 쓰면 그냥 비 맞고 집에 오는 날이 됩니다. 그 두 가지를 모두 경험한 이야기입니다.


백색사원, 비 맞으러 갔다 온 날

치앙라이에서 가장 유명한 곳을 꼽으라면 누구나 백색사원을 말합니다. 여기서 백색사원이란, 태국어로 '왓 롱쿤'이라 불리는 곳으로 치앙마이에서도 당일치기 투어를 신청해 찾아올 만큼 상징성 있는 명소입니다. 저희는 외곽 타운하우스에 머물고 있었는데, 마침 백색사원이 그쪽 방향이라 택시를 불렀습니다.

출발 직전까지만 해도 하늘이 너무 맑아서 선글라스를 챙기러 다시 방으로 들어갔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택시를 타자마자 먹구름이 몰려왔습니다. 택시 기사 아저씨가 목적지에 내려주고 가셨는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고 저희는 근처 카페에 갇혔습니다. 한참을 기다리다가 결국 "비가 와도 걷는 거야"라는 결론을 내리고 걸어서 입장했습니다.

입장료는 1인당 100바트, 한국 돈으로 약 4,000원입니다. 들어가서 보니 제가 동남아에서 본 사원 중 가장 예쁜 곳이었습니다. 여기서 사원 구성을 잠깐 설명하자면, 백색사원은 현생·지옥·천국이라는 세 가지 테마로 설계되어 있습니다. 지옥을 표현한 구역에는 손바닥과 손가락 형상이 가득한데, 구원받지 못한 영혼들이 살려달라고 손짓하는 모습입니다. 그 위를 지나 다리를 건너면 천국 입구에 해당하는 사원 본관으로 들어갑니다. 본관 내부는 촬영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한 가지 솔직한 생각을 더하자면, 치앙마이에서 이것 하나만 보려고 시간을 내는 건 조금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쁜 건 분명합니다. 근데 이미 치앙라이에 머물고 있는 사람에게는 정말 좋은 곳이고, 치앙마이에서 왕복 투어로 오는 분에게는 "생각보다 작고 금방 볼 수 있다"는 체감이 있을 수 있습니다. 비 맞고 젖은 신발로 돌아오는 길에 저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 입장료: 1인 100바트 (약 4,000원)
  • 위치: 치앙라이 시내보다 외곽
  • 구성: 현생 → 지옥(손 조형물) → 천국(본관 사원), 본관 내부 촬영 금지
  • 주의: 우기에는 택시 타자마자 날씨 바뀌는 경우 있음, 우산 필수
요약: 백색사원은 동남아 사원 중 가장 독특한 설계를 가진 곳이지만, 치앙마이에서 당일치기로 오기엔 이동 피로 대비 체감 규모가 작을 수 있습니다. 치앙라이 현지 숙박자에게 더 잘 맞는 코스입니다.

현지인시장, 떠날 때 돼서야 발견한 곳

수박 한 통 800원, 망고 다섯 개 2,000원. 이 가격을 저는 치앙라이를 떠나기 며칠 전에야 알았습니다. 자전거로 5분 거리에 있는 도매시장이었는데, 10박 내내 택시를 타고 전혀 다른 방향만 돌아다녔습니다. 뒤늦게 발견하고 나서 "온 첫날 알았으면 매일 나갔을 텐데"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왔습니다.

여기서 도매시장이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관광용 야시장이나 나이트 바자가 아니라 현지인들이 식재료를 사는 새벽·오전 시장을 말합니다. 치앙라이에는 이런 시장이 숙소 근처에 있을 가능성이 높은데, 택시나 그랩만 쓰다 보면 존재 자체를 모르고 지나칩니다. 저희가 딱 그랬습니다.

시장 구경을 제대로 한 날, 현지인들이 밖에서 술 마시고 노는 장면들을 지나쳤습니다. 그냥 평범한 동네 풍경인데, 그날이 태국에서 가장 좋았던 하루로 기억에 남았습니다. 관광지보다 그런 장면이 더 오래 남습니다.

요약: 치앙라이 외곽 숙박 시, 숙소 반경 5분 이내 현지인시장을 첫날 바로 확인해 두는 것이 물가 대비 가장 효율적인 선택입니다.

야시장과 르메르디앙, 돈을 어떻게 쓰는지가 행복을 만든다

치앙라이에서 지낸 마지막 즈음, 이틀 연속으로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밥을 먹었습니다. 한 끼는 르메르디앙 호텔 이탈리아 레스토랑, 다음 끼는 야시장 노천 테이블. 둘 다 만족도가 높았는데, 이유가 달랐습니다.

르메르디앙 호텔 내 이탈리안 레스토랑은  파스타 한 접시에 세금 포함 약 2만원정도,  리버뷰가 보이는 야외 테이블에서 먹었습니다. 치앙라이를 가로지르는 강 풍경이 식사 내내 보였습니다. "오성이지만 편안하게 해주는 느낌"이라는 표현이 그날 식사를 가장 잘 설명합니다. 맥주를 마셨더니 졸려서 바로 커피를 때렸고, 카페까지 택시비는 2,500원이었습니다. 

야시장은 치앙라이 시내 중심에 있었습니다. 황금시계탑을 지나 들어갔는데, 여기서 황금시계탑이란 백색사원을 설계한 동일 작가가 태국 국왕 즉위 60주년을 기념해 제작한 랜드마크 조형물입니다. 시계탑을 지나 야시장에 들어서면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저희는 생맥주 1리터를 만원에 시켰고, 게살 요리와 오이무침, 밥을 추가했습니다. 마지막에 소주까지 추가해서 두 명이 먹은 총금액이 55,000원이었습니다.

유럽에서는 밥 한 끼에 5~6만원이 나오면 먹는 내내 계산기를 두드리게 됩니다. 치앙라이 야시장에서는 55,000원으로 두 명이 생맥주, 게살 요리, 하이볼, 소주, 볶음밥까지 먹었습니다. 먹는 걸 좋아하는 여행자에게 동남아가 계속 오고 싶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아무거나 시켜도 맛있고, 많이 시켜도 부담이 없습니다.

  • 르메르디앙 이탈리아 레스토랑: 파스타 기준 1인 약 2만원(세금 포함), 리버뷰 좌석 가능
  • 도이찬 커피 시내점: 아이스 아메리카노 1,800원, 원플러스원 행사 시 두 잔 2,800원
  • 야시장 생맥주: 아사히 1리터 약 10,000원, 크리미한 거품이 특징
요약: 치앙라이에서의 지출은 "얼마를 쓰느냐"보다 "어디에 쓰느냐"가 만족도를 결정합니다. 르메르디앙 파스타 한 끼와 야시장 생맥주 한 잔, 둘 다 각자의 방식으로 충분히 좋았습니다.

치앙라이는 치앙마이보다 훨씬 작은 도시입니다. 시내만 보면 한 달을 채우기엔 금방 지겨워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처럼 외곽 타운하우스에 베이스를 두고 생활하는 방식이 잘 맞았습니다. 숙소 근처 도매시장을 먼저 파악하고, 백색사원은 날씨 좋은 오전에 다녀오고, 야시장은 마지막 밤에 아끼지 말고 먹을 것. 순서가 바뀌었던 저는 비 맞고 수박을 뒤늦게 먹었지만, 덕분에 다음에 오면 어떻게 살지는 이미 다 알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