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대도시와 소도시 (마레지구, 몽마르뜨, 콜마르)

솔직히 저는 파리를 너무 만만하게 봤습니다. 에펠탑 앞에서 사진 한 장 찍고, 크루아상 하나 베어 물면 그게 파리 여행인 줄 알았거든요. 근데 막상 공항에서 짐 찾는 순간부터 뭔가 달랐습니다. 안내판 하나 읽는 것도 버겁고, 빗속에서 에펠탑 불이 켜지기를 배고픔 참아가며 기다리는 그런 여행이었습니다. 저는 주식으로 모은 돈을 들고 파리로 날아갔고, 파리에서 알자스 지방 콜마르까지 이동했습니다. 이 글은 그 여정을 있는 그대로 씁니다.


마레지구 쇼핑과 에펠탑, 기대와 현실 사이 어딘가

파리에 왔으면 쇼핑을 안 할 수가 없잖아요. 저희는 짐을 호텔에 맡겨두고 마레지구로 쇼핑을 하러 갔습니다. 여기서 마레지구(Le Marais)란 파리 3·4구에 걸쳐 있는 지역으로, 독립 브랜드 편집숍과 빈티지 숍이 밀집해 있는 쇼핑 거리입니다. 파리지앵 느낌 나는 옷을 좀 사보겠다는 생각으로 들어갔는데, 막상 쇼핑몰이 엄청 크긴 한데 딱히 살 게 없더라고요. 결국 H&M에서 원피스 하나, 자켓 하나, 귀걸이 하나 정도 샀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는 파리 소매치기를 너무 겁냈습니다. 옷도 일부러 딱 붙는 걸로 입고, 가방도 몸 앞쪽으로 껴안고 다녔는데 사실 그게 너무 힘들었습니다. 빨래도 잘 안 되고, 거기다 비까지 날리고 있으니까요. 지하철역 근처에서는 특히 긴장을 늦추지 않았는데, 결국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과하게 긴장했나 싶기도 하고, 그래도 조심하길 잘했다 싶기도 하고.

에펠탑은 오후 8시에도 해가 지지 않아서 불이 켜지기를 배고픔 참아가며 기다렸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에펠탑보다 몽마르뜨가 더 좋았습니다. 에펠탑은 멀리서 보면 몰랐는데 가까이서 보니 그냥 커다란 철 구조물이구나 싶더라고요. 야경은 반짝임을 기대했는데 불이 켜지는 것 자체는 장관이었습니다. 퐁피두센터도 슬쩍 들렀는데, 미술에 관심이 없는 저도 외관은 신기하다고 느꼈습니다.

퐁네프 다리도 걸어봤는데, 영화에서 봤던 낭만 같은 건 솔직히 크게 안 느껴졌습니다. 그냥 오래된 다리인데 사람이 많은 거였습니다. 다리 위에서 물 한 병 사 먹을 데가 없어서 목이 말랐던 기억만 선명합니다. 

요약: 마레지구 쇼핑은 H&M 중심, 에펠탑은 야경보다 가는 길이 더 인상적이었고, 퐁네프는 기대보다 현실적이었음.

몽마르뜨 언덕, 가난했던 예술가들이 만들어낸 낭만

파리에서 제가 제일 좋았던 곳을 꼽으라면 단연 몽마르뜨입니다. 여기서 몽마르뜨(Montmartre)란 파리 18구에 있는 언덕 지구로, 사크레쾨르 성당이 꼭대기에 자리하고 있으며 과거 화가와 예술가들이 모여 살던 동네입니다. 언덕을 올라가는 길부터 잘못 찍어서 묘지 쪽으로 가버리는 바람에 체력을 소모했는데, 그 덕에 도착했을 때 느낌이 더 강렬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몽마르뜨가 낭만의 거리가 된 이유가 있습니다. 예전에 이 지역이 파리 성 밖이라서 세금이 면제됐다고 합니다. 그 덕에 가난한 예술가들이 여기 몰려 살았고, 그 사람들이 쌓아온 것들이 지금의 몽마르뜨가 됐다는 거죠. 저는 종교가 없는데도 성당 안에 앉아있으면서 이상하게 울컥했습니다. 가만히 그 신성함 속에 앉아있으니까 옛날이랑 지금의 제 마음가짐이 너무 달라진 게 느껴져서요.

10년 전에 유럽여행을 왔을 때만 해도 예쁜 건물 앞에서 사진 찍기 바빴는데, 이번엔 사람 구경이 더 재밌었습니다. 파리 사람들은 옷 입는 게 자기 개성이 너무 강해서 그냥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즐거웠습니다. 앞머리 스타일 하나도 다 달랐고요. 저는 베이지 계열의 패피들 사이에서 어울리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그게 또 재밌는 거더라고요. 프랑스어도 못하고 영어로 말하면 프랑스어로 돌아오는 상황에서도, 생각보다 아시아인에게 굉장히 친절하다는 걸 느꼈습니다. 일주일 내내 현지인들한테 친절을 많이 받았습니다.

요약: 몽마르뜨는 과거 세금 면제 구역이라 예술가들이 모였고, 그 역사가 지금의 낭만 거리를 만들었음. 파리에서 가장 울컥했던 장소.

콜마르, 동화마을인 줄 알았는데 자유의 여신상 고향이었다

파리를 며칠 즐기고 나서 저희는 프랑스 동부 알자스 지방에 있는 콜마르로 이동했습니다. 새벽 5시 40분에 나와서 기차를 탔는데, 그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살면서 이렇게 일찍 나와본 적이 있었나 싶었습니다. 여기서 콜마르(Colmar)란 프랑스 알자스 지방의 소도시로, 독일과 국경이 맞닿아 있어 독일 문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곳입니다. 알록달록한 목조 가옥들이 그대로 보존돼 있어서 실제로 하울의 움직이는 성 배경이 됐다는 말이 나올 정도입니다.

콜마르에 대한 정보가 많지 않아서 현지 버스 기사 아저씨한테 요금을 물어봤는데 의사소통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버스 요금이 1유로 정도 한다고 어떻게어떻게 알아냈고, 마을 자체는 진짜 평화로웠습니다. 사람들이 그냥 자기 생활을 하고 있는 느낌이었고, 파리처럼 북적이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제가 미처 몰랐던 게 있었습니다. 콜마르 시내를 걷다 보니 자유의 여신상 표식이 곳곳에 있었는데, 알고 보니 자유의 여신상을 조각한 조각가 바르톨디(Bartholdi)가 바로 이 콜마르 출신이라고 합니다. 거기다 에펠탑 내부 철골 구조도 에펠이 설계한 거라고 하더라고요. 세계적인 랜드마크를 만든 사람이 이 작은 시골 마을에서 나왔다는 게 신기했습니다. 10년 전에 왔으면 그냥 예쁜 마을이구나 하고 지나쳤을 텐데, 이번엔 미리 좀 검색을 하고 갔더니 안 보이던 게 보였습니다.

콜마르에서는 에어비앤비 할머니 호스트 집에서 일주일 정도 묵었습니다. 마트 물가가 파리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좋았습니다. 와인이 진짜 저렴하고, 고기도 한국보다 훨씬 쌌습니다. 여기서 스테이크에 와인 한 잔 마시는데, 이게 행복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마트 코카콜라 제로가 5유로 정도였는데, 그것도 파리보다는 확실히 나았습니다. 스위스로 넘어가기 전 마지막 날 새벽에 짐 싸면서 콜마르가 생각보다 훨씬 좋은 곳이었다고 느꼈습니다. 마트 물가가 좋고 조용하고, 실컷 먹을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 위치: 프랑스 동부 알자스 지방, 독일 국경 인접
  • 특이사항: 자유의 여신상 조각가 바르톨디의 고향
  • 물가: 파리 대비 저렴, 와인·고기·식재료 특히 저렴
  • 버스 요금: 약 1유로 내외
  • 추천 이유: 조용한 마을 감성, 마트 물가, 동화 같은 건물들
요약: 콜마르는 자유의 여신상 조각가의 고향이자 알자스 와인 산지. 파리 지치고 나서 진짜 쉬고 싶다면 여기가 정답.

파리에서 콜마르까지, 저의 프랑스 일정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날 것 그대로였습니다. 길을 잘못 찍어서 묘지 쪽으로 가고, 에어비앤비 문 여는 법을 몰라서 한참 서 있고, 에펠탑 불 켜지길 배고프게 기다리고. 그런데 돌아보면 그게 전부 기억에 남는 장면들입니다. 파리가 두 번, 세 번 가고 싶은 도시라는 말을 몽마르뜨에 앉아서 처음으로 이해했습니다. 혹시 파리를 처음 간다면, 에펠탑만 보고 오지 마시고 몽마르뜨에서 한 시간만 아무것도 안 하고 앉아보시길 권합니다. 그리고 여유가 된다면 콜마르까지 꼭 가보세요. 진짜 여행은 거기서부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