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 여행 코스 (스타벅스리저브, 건축유람선, 클라우드게이트)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시카고에 발을 딛는 순간 든 첫 생각이 "뉴욕인가?"였거든요. 경찰차에 "CHICAGO POLICE"라고 써 있지 않았다면 저는 정말 모르고 지나쳤을 것 같습니다. 뉴욕에서 50일을 살았던 터라 모든 걸 뉴욕과 비교하게 됐는데, 하루를 다 보내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시카고는 비교당하려고 존재하는 도시가 아니었다는것을요. 지금부터 제가 직접 걸어 다니며 확인한 시카고 여행 코스를 풀어보겠습니다.
세계 최대 스타벅스 리저브 로스터리
시카고 첫날 아침, 저희가 제일 먼저 향한 곳은 스타벅스였습니다. 단순한 스타벅스가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큰 스타벅스 리저브 로스터리라는 타이틀이 붙은 곳입니다. 여기서 리저브 로스터리란, 일반 스타벅스 매장과 달리 원두를 직접 로스팅하고 다양한 추출 방식과 시즌 메뉴를 운영하는 플래그십 체험형 매장을 말합니다. 한국에도 리저브 매장이 있긴 하지만, 이곳은 규모 자체가 다릅니다.
건물은 5층 구조인데, 층마다 성격이 완전히 다릅니다. 4층에는 위스키 바가 있고, 5층은 루프 테라스입니다. 각 층에서 시음을 진행하고 있어서 저도 의도치 않게 여러 잔을 맛봤습니다. 위스키에 에스프레소를 넣은 듯한 향, 스파이시한 뉘앙스가 돌다가도 다음 잔에선 전혀 다른 인상을 주는 원두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처음에는 "스파이시한 향이 난다"는 설명이 잘 납득이 안 됐는데, 실제로 마셔보니 정말 그랬습니다. 메뉴는 일반 매장과 완전히 다르고, 원두별로 선택할 수 있으며 이곳 자체 제작 시럽을 사용한 시즌 메뉴도 따로 있습니다. 저는 대표 원두로 만든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헤이즐넛 라떼를 시켰는데, 라떼가 의외로 맛있었습니다.
사실 저는 평소에 라떼를 잘 마시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떤 커피 좀 안다는 분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원두의 진짜 맛은 라떼로 마셔봐야 알 수 있다고요. 그 카더라가 이날 현장에서 조금 납득이 됐습니다. 그리고 이 로스터리를 돌아다니다 보니 임용 직후 연수 기간에 매일 아침 사당역 스타벅스 리저브에서 텀블러에 커피를 담아 가던 기억이 올라왔습니다. 강의실에 들어가기 전 텀블러 뚜껑을 열면 향이 코끝까지 올라오던 그 순간이 하루 종일 저를 버티게 해줬거든요. 시카고에서 그 감각이 다시 살아났습니다.
막연히 큰 기대를 품고 가면 "별거 없네" 하고 나올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케아 구경하듯 층층이 구경하고, 시음하고, 술도 한 잔 곁들이는 식으로 접근하면 충분히 재미있는 공간입니다. 굳이 커피 마시러만 가는 곳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 건물 규모: 5층, 루프 테라스(5층)와 위스키 바(4층) 포함
- 메뉴 구성: 일반 매장과 완전히 다르며 원두별 선택, 자체 제작 시럽 시즌 메뉴 별도 운영
- 방문 포인트: 층마다 시음 진행, 커피보다 공간 자체를 즐기는 데 의미가 있음
건축유람선, 27달러짜리 45분이 그만한 가치가 있을까요
시카고가 건축으로 유명하다는 건 여행 전에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 배경이 이렇습니다. 1871년 대화재로 시카고 건물 3분의 2가 나흘 만에 불타버렸습니다. 당시 대부분의 건축물이 목재였기 때문에 불이 순식간에 번진 것입니다. 여기서 1871년 시카고 대화재란, 미국 19세기 역사상 가장 큰 도시 화재 중 하나로 기록된 사건입니다. 이 재앙이 역설적으로 지금의 시카고를 만들었습니다. 폐허 위에 당대 최고의 건축가들이 앞다퉈 신식 건물을 올리기 시작했고, 그것이 지금 강변을 따라 늘어선 현대 건축물들의 뿌리가 됐습니다.
시카고 강 위에서 이 건물들을 보며 해설을 듣는 아키텍처 보트 투어, 즉 건축 유람선이 이 도시의 대표 체험으로 꼽히는 이유가 거기 있습니다. 저희는 리버워크에서 배를 탔습니다. 45분 코스에 인당 27달러, 한화로 약 38,000원 정도였습니다. 비수기임에도 운행 중이었는데, 원래 겨울에는 강이 얼어서 못 탈 때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저희가 간 날은 날씨가 워낙 따뜻해서 강이 얼지 않았고, 덕분에 탈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배 위에서 가이드가 영어로 설명을 해주는데, 저는 거의 못 알아들었다는 겁니다. 알아들으면 더 좋았겠지만, 몰라도 건물 자체가 주는 압도감은 충분했습니다. 그런데 내리고 나서가 진짜였습니다. 5분 탔다고 몸이 꽝꽝 얼어버려서 근처 애플스토어로 몸 녹히러 들어갔는데, 통창 너머로 보이는 강변 건물들이 배 위에서 본 것보다 훨씬 멋있었습니다. 배 타고 보는 것보다 리버워크나 애플스토어 통창에서 바라보는 게 오히려 더 좋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카고 아키텍처 투어 관련 정보는 출처: Chicago Architecture Center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클라우드게이트, 왜 그 앞에서 눈물이 날 뻔 했을까요
솔직히 말하면 저는 더 빈, 즉 클라우드 게이트가 왜 유명한지 이해가 안 됐습니다. 사진으로 보면 제 키만 한 콩 모양 조형물로 보이거든요. 그런데 현장에서 멀리서 보는 순간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엄청납니다. 110톤이라고 합니다. 1톤짜리 트럭 110대 무게입니다. 여기서 클라우드 게이트란, 스테인리스 강판 여러 장을 이어 붙여 만든 뒤 이음새를 인부들이 직접 손으로 연마해 거울 표면을 완성한 조형물입니다. 그 덕분에 주변 건물과 하늘과 지나가는 사람들이 모두 표면에 담기는데, 어느 각도에서 보느냐에 따라 형태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그런데 저를 더 붙잡은 건 더 빈 옆 크라운 분수였습니다. 13분에 한 번씩 전광판 속 얼굴이 바뀝니다. 연예인도, 광고 모델도 아닙니다. 시카고에 사는 일반 시민들 얼굴입니다. 카메라를 응시하다가 눈을 깜빡이고, 입꼬리를 살짝 올리다가 다시 표정이 잦아드는 그 모습이 계속 흘러갑니다.
저는 그 앞에 한참을 서 있었습니다. 나이 지긋한 50대쯤 돼 보이는 분들 얼굴이 뜰 때면 뭔가 이상하게 감정이 올라왔습니다.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슬픈 것도 아닌 표정인데, 그 얼굴에 그 사람이 살아온 세월이 다 보이는 것 같은 거예요. 반면 어린아이들이 뜨면 그냥 웃겼습니다. 눈빛에 장난기밖에 없었거든요. 동행한 친구도 별로 공감을 못 한다고 했는데, 저는 타임스퀘어 전광판이 돈으로 만든 감성이라면 여기는 인간적인 감수성을 더한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카고 오시면 여기서 30분만 앉아서 사람들 얼굴을 봐 보세요. 유람선보다 더 재밌었습니다. 개인적으로요.
- 클라우드 게이트(더 빈): 무게 110톤, 스테인리스 강판 수작업 연마로 완성된 거울 표면 조형물
- 크라운 분수: 13분마다 시카고 시민 얼굴이 전광판에 교체 등장, 연예인이나 광고 없음
- 관람 팁: 조형물 자체보다 그 앞에 앉아서 사람들 반응을 구경하는 시간이 오히려 더 인상적일 수 있음
시카고피자, 한국에서 먹던 그것과 같은 음식인가요
저는 원래 피자를 밥으로 먹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한식이 함께 있거나, 아니면 그냥 간식 정도의 포지션이어야 피자가 들어갑니다. 그런데 시카고까지 왔으니 안 먹을 수는 없었습니다. 유람선에서 얼어버린 몸을 녹인 뒤 시카고피자 맛집으로 걸어갔습니다. 주문을 넣고 나니 직원이 45분이 걸린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딥디시 피자란, 일반 피자보다 도우가 훨씬 두껍고 치즈와 속 재료가 반대로 쌓이는, 즉 치즈가 맨 위가 아니라 토핑 위를 덮는 시카고 고유의 피자 스타일입니다. 그 두께 때문에 굽는 시간이 그만큼 걸립니다.
그 사이에 생맥주를 시켰습니다. IPA와 블루문. IPA는 홉이 강하게 살아있었고, 블루문은 고수 향이 살짝 도는 특유의 청량함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맥주를 다 비울 즈음 피자가 나왔습니다. 치즈를 걷어내면 그 아래에 온갖 야채가 꽉 차 있습니다. 한국에서 먹던 시카고식 피자는 이런 구성이 아니었습니다. 친구가 한 입 먹고 한 말이 기억납니다. "피자 맛이 3배 농축돼 있는 느낌이야. 한 입 먹었는데 세 입 먹은 것 같아." 저도 기대를 전혀 안 하고 먹었다가 맛있어서 당황했습니다.
남은 피자는 포장해서 다음 날 24시간 기차 안에서 먹기로 했습니다. 버팔로에서 원조 버팔로윙을 먹고, 시카고에서 원조 시카고피자를 먹고, 이렇게 그 도시에서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직접 먹어보는 게 여행에서 제일 좋은 경험 중 하나라는 걸 이번에 다시 확인했습니다. 돈 주고 경험을 사는 거라는 말이 딱 맞는 날이었습니다.
하루를 다 보내고 나서 든 생각은 이겁니다. 시카고는 뉴욕보다 작고, 뉴욕처럼 압도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여행지로만 따지면 많은 분들이 뉴욕이 낫다고 하는 말도 이해합니다. 그런데 사는 곳으로는 시카고가 더 좋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볼거리가 도보 반경 안에 모여 있고, 리버워크가 있고, 밀레니엄파크가 있고, 크라운 분수처럼 일반 시민을 도시의 중심에 올려두는 공간이 있는 곳이니까요. 겨울 당일치기로도 충분히 다 돌아볼 수 있는 동선입니다. 다음날 저희는 24시간 기차를 타고 텍사스 댈러스로 이동합니다. 남은 피자를 챙겨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