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 후기 (까미노, 용서의 언덕, 알베르게)

프랑스 생장피에드포르에서 산티아고 콤포스텔라까지, 총 800km입니다. 저는 그 거리를 다 걷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그게 조금도 부끄럽지 않습니다. 오히려 완주하지 못한 덕분에 이 길이 저한테 진짜로 말을 걸어왔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어디까지 걸었느냐보다 걷는 동안 무슨 생각을 했느냐가 더 중요한 길이거든요. 산티아고 순례길을 떠나기 전, 블로그에서 이런 글을 읽었습니다. "걷고 나서 주변에 걷고 싶은 사람이 생기면 도시락 싸들고 가서 말린다"고요. 저도 그렇게 될까 봐 걱정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저는 정반대가 됐습니다.


출발부터 삐걱 — 까미노는 처음부터 계획대로 안 된다

생장에 도착하자마자 첫 번째 문제가 생겼습니다. 순례자 사무실에서 받아야 하는 크레덴시알, 여기서 크레덴시알이란 순례자 여권으로 각 숙소와 교회에서 스탬프를 찍어 완주를 증명하는 수첩입니다. 그 사무실 운영 시간을 놓쳐버린 것입니다. 게다가 출발 전에 짐을 먼저 보내려 했더니 비수기라 해당 서비스 자체를 안 하더라고요. 짐을 로그로뇨까지 직접 들고 가서 우체국에서 부쳐야 했습니다. 7kg짜리 가방을 메고 피레네 산맥을 넘기 시작한 첫날, 빗속에서 출발했습니다. 분명히 비가 안 온다고 했는데 비가 왔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사건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프랑스에서 스페인 국경을 넘는 그 경이로운 순간, 카메라 마이크가 고장 나 있다는 걸 확인했습니다. 직전까지 찍어두었던 모든 영상의 음성이 통째로 날아간 것입니다. 그 순간 기분이 어땠냐면, 표현이 바로 나왔습니다. "속상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건, 하루치 영상만 날아간 걸 확인하고 나서 기분이 거짓말처럼 회복됐다는 점입니다. "신이 우리를 보호했다"는 말이 진지하게 입에서 나왔을 정도로요. 이 길이 사람을 이렇게 만듭니다.

까미노를 준비하면서 저는 헤드랜턴을 샀습니다. 이른 새벽 출발에 필수라고 해서요. 그런데 저는 단 한 번도 해가 뜨기 전에 출발하지 않았습니다. 헤드랜턴은 순례길 내내 가방 안에서 잠들었습니다. 준비물이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 이 길에서는 그게 제일 먼저 무너집니다.

  • 크레덴시알 발급: 생장 순례자 사무실에서 출발 당일 발급. 운영 시간 반드시 확인 필요
  • 짐 배송 서비스: 기수기간(비수기)에는 구간 짐 배송이 중단될 수 있음. 미리 확인 필수
  • 가방 무게: 체중 대비 적정 무게 권장. 저는 88kg 기준 7kg로 시작했고 이후 우체국에서 짐 일부 발송
  • 길 찾기: 시내에서는 조가비 문양, 야외에서는 노란 화살표를 따라가면 됨. 길치도 거의 헤매지 않는 구조
요약: 까미노는 첫날부터 계획이 어긋납니다. 그 어긋남을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이 길의 첫 번째 수업입니다.

용서의 언덕에서 — 결국 용서할 사람이 별로 없었다

팜플로나를 출발해 25km를 걷는 날, 중간에 용서의 언덕을 지나게 됩니다. 여기서 용서의 언덕이란 까미노에서 가장 상징적인 지점 중 하나로, 순례자들이 누군가를 마음속으로 용서하거나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는 장소입니다. 저는 20km를 걸어오는 내내 누굴 용서할지 진지하게 고민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생각해보니, 떠오르는 사람이 많지 않았습니다. 한 명이 떠올랐는데 전날 알베르게에서 만난 외국인 아주머니였습니다. 모르는 언어로 세 번이나 소리를 지른 그 분을요. 알고 보니 저한테만 그런 게 아니었습니다. 그러니까 결론적으로, 저는 용서의 언덕에서 특별히 깊은 내면의 적을 꺼내지 못했습니다. 대신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으로 누군가에게 용서받을 짓은 하지 말자." 그게 전부였고, 그걸로 충분했습니다.

언덕을 다 오르고 나서 문득 첫 제자들이 생각났습니다. 제가 교사로 일하던 시절, 초등학교 제자들이요. 못난 선생을 만나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이제 성인이 된 그 아이들한테 마음으로 사과를 했습니다. 다행히 그 아이들은 지금 잘 살고 있고, 작년에 만났을 때 술도 제일 잘 마셨습니다. 그 생각을 하면서 웃으며 내리막길을 내려갔습니다. 순례길에서 기대했던 거대한 내면의 깨달음은 오지 않았고, 대신 작고 소박한 화해들이 조용히 왔습니다.

그날 25km를 걷고 숙소에 도착했을 때 자리가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전날 저녁을 함께 먹었던 미국인 린다가 알베르게 호스트에게 미리 예약을 잡아줬습니다. 덕분에 2인실에 묵었는데, 저는 그날 처음으로 "천국이 있다면 여기일 것"이라는 말을 진심으로 했습니다. 다음날 린다는 돌뿌리에 걸려 넘어져 무릎이 크게 부었고, 혼자 호텔에 남았습니다. 제가 조금만 일찍 붙잡았어도 됐을 텐데, 그 미안함을 안고 다음 마을을 향해 걸었습니다.

까미노에서 알베르게란 순례자 전용 숙소를 뜻합니다. 공립 알베르게는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사립 알베르게는 시설이 더 좋으며 1인당 약 3만 원 수준입니다. 저녁에는 순례자 메뉴가 제공되는 경우가 많은데, 와인이 무제한으로 제공되는 곳도 있었습니다. 이걸 알고 나서 저는 매일 까미노를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출처: Camino Travel)

요약: 용서의 언덕에서 거창한 용서는 없었습니다. 대신 작고 조용한 화해들이 걸어오는 동안 자연스럽게 왔습니다.

완주하지 않기로 했다 — 그래서 산티아고에서 울었다

순례길을 중단하기로 결정한 건 부르고스 근처였습니다. 그날은 햇볕이 너무 뜨거워 걷는 것 자체를 즐기기가 어려웠고, 마음속에서 이런 질문이 올라왔습니다. "내가 무엇을 위해 이걸 하고 있는가?" 저는 이 길을 자아를 내려놓기 위해 왔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걸을수록 욕망이 채워지고 싶어지는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자라 매장이 얼마나 쌀지 기대하고, 도시가 그립고, 좋은 음식이 먹고 싶었습니다. 내려놓으러 온 여행에서 자꾸 채우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이것이었습니다. "먼 훗날 마음이 힘든 날을 위해 남은 길을 남겨두기로 했다." 억지로 걷지 않아도 된다는 것, 한국인들이 유독 완주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는 걸 외국인 순례자들을 보면서 느꼈습니다. 외국인들은 대개 "내가 가고 싶을 때까지 간다"고 했습니다. 그 태도가 오히려 이 길의 정신에 더 맞는 것 같았습니다. (출처: 산티아고 순례자 사무소)

그리고 기차를 타고 산티아고 콤포스텔라에 도착했습니다. 원래 짐을 11월 25일에 찾기로 했는데, 실제로 도착한 날은 10월 21일이었습니다. 한 달 이상 더 걸었어야 했을 거리를 8시간 기차로 왔습니다.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콤포스텔라 성당 광장에 들어서는 순간, 완주한 순례자들이 서로 안기며 울고 있었습니다. 저는 감동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저도 울었습니다. 왜 우는지 몰랐습니다. 조금밖에 안 걸었는데 왜 눈물이 나느냐고 옆 사람한테 물어볼 수도 없었습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짧게 걸은 제 걸음도 헛되지 않았다는 걸 몸이 먼저 알았던 것 같습니다.

이 길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들을 꼽자면 의외로 거창한 장면들이 아니었습니다. 알베르게에서 라면과 삼겹살을 먹었던 저녁, 수도원 양조장에서 공짜 와인을 받아 마셨던 오후, 바에서 맥주와 계란이 들어간 감자 요리를 처음 먹었을 때 "엄마가 해주는 계란말이 같다"는 말이 나왔던 그 순간들이요. 여기서 순례자 메뉴란 대개 전채-메인-디저트와 와인이 포함된 정식으로 구성된 저렴한 식사를 뜻합니다. 걷고 나서 먹는 것들은 이유 없이 맛있습니다.

요약: 완주하지 않아도 산티아고에서 울 수 있습니다. 걸음의 길이가 아니라 걷는 동안의 밀도가 이 길을 만듭니다.

이 글을 쓰고 나서 저는 아직도 까미노를 열 번도 더 걸을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을 갖고 있습니다. 처음 출발할 때 "나는 왜 이걸 걷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하루에도 몇 번씩 했습니다. 지금은 그 질문 자체가 답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걷다 보면 근심이 사라지고, 맛있는 게 먹고 싶어지고, 자고 나면 또 걷고 싶어집니다. 그렇게 하루에 온갖 감정을 다 겪는 것, 그게 이 길이 주는 것입니다. 사서 고생이냐고요? 저는 전혀 고생스럽지 않았습니다. 다만 솔직히 말하면, 완주를 못 한 구간은 지금도 조금 간지럽습니다. 피레네 산맥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마음, 아직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