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밀양 여름 여행 (쇠점골계곡, 호박소, 얼음골)

성큼 다가온 여름에 곧 있으면 아이들 방학이며 직장인 휴가철까지 시원한 여행지를 미리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름엔 역시나 시원한 산자락 계곡 여행이 최고의 선택입니다. 우리나라에 많은 계곡중에서도 밀양 산내면에는 쇠점골계곡, 호박소, 얼음골이 한 동선으로 묶여 있어 반나절이면 세 곳을 다 훑을 수 있는데, 막상 다녀오고 나서 "왜 이제야 왔나" 싶을 정도로 알찬 코스였습니다.



쇠점골계곡: 계곡 트래킹

쇠점골이라는 이름이 낯설게 느껴지는 분도 있을 텐데, 이름 자체에 역사가 있습니다. 옛날 밀양과 울주군을 오가던 사람들이 석남재 아래 이곳에서 말의 편자를 갈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옛 교통로의 흔적이 지명 하나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셈입니다. 트레킹은 백련사 앞 주차장에서 시작합니다. 초입부터 그늘진 숲길이 이어지는데, 나무 사이로 간간이 빛이 내려앉는 정도라 한여름에도 땀이 많이 나지 않습니다. 제가 직접 걸어보니 초입에서 오천평반석까지는 정말 평탄해서 운동화로도 충분했습니다. 계곡 트레킹이라서 돌길에 난이도가 어려울 거라 생각했는데, 저는 석남터널 바로 앞 구간을 제외하면 거의 산책로 수준이라고 느꼈습니다. 오천평반석은 말 그대로 거대한 바위 하나가 계곡 바닥 전체를 뒤덮고 있는 지형입니다. 쉽게 말해 계곡 위에 거대한 바위 마당이 펼쳐져 있는 형태인데, 청송 백석탄 계곡과 비슷한 분위기가 납니다. 나무가 우거진 산이라 그늘진 자리도 군데군데 있어서 여름 성수기에 피서객이 많이 몰리는 이유를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쇠점골에서 쌍둥이 폭포라 부르는 형제폭포도 눈길을 끕니다. 두 줄기가 나란히 떨어지는 모양이 단정해서, 잠깐 앉아 물소리를 듣고만 있어도 머릿속이 비워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석남터널까지 가는 트래킹 코스 내내 크고 작은 폭포가 계속 이어져서 걷는 내내 새로운 풍경을 눈에 담느라 힘든 줄도 몰랐습니다. 쇠점골 트레킹 총 소요 시간은 왕복 약 2시간 30분이며, 석남터널까지 편도로 이동 후 되돌아오는 코스입니다. 중간에 화장실이 전혀 없으므로 출발 전에 미리 해결해야 합니다. 석남터널 인근 간이음식점은 여름 성수기 외에는 문을 닫는 경우가 많아 도시락이나 간식을 챙기는 것이 낫습니다. 길 표시가 희미해지는 구간이 두 군데 있는데, 나무에 묶인 리본이나 사람이 지난 흔적을 따라가면 금방 방향을 잡을 수 있습니다. 주차는 백련사 입구 주차장을 이용하면 되고, 성수기에는 오전 일찍 도착하는 것을 권장합니다.



호박소: 사진보다 실물이 훨씬 낫습니다

시례호박소는 국내 명수 100선에 선정된 계곡입니다. 명수 100선이란 환경부와 한국수자원공사가 수질과 경관을 기준으로 선정한 전국 100개 명소를 가리키는데, 그만큼 물이 깨끗하다는 공식 인증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가보면 화강암 바닥이 하얗게 빛나고 그 위로 옥빛 물이 흐르는 광경이 꽤나 비현실적으로 느껴집니다. 호박소라는 이름은 조선시대 지리서인 동국여지승람에도 등장합니다. 10여m 높이에서 떨어지는 폭포가 바위를 오랜 세월 파내 절구처럼 움푹 파인 못을 만들었고, 그 모양이 방앗간 호박처럼 생겼다 해서 호박소라 불렀다고 합니다. 막상 눈앞에 서 보니 흰 화강암이 쭉 이어지다 갑자기 깊고 푸른 소가 열리는 광경이 압도적이었습니다. 사진으로는 깊이감이나 물색이 실제 절반도 담기지 않기 때문에 꼭 직접가봐야 한다는 저의 의견입니다. 깊이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롭습니다. 예전 지역 주민들이 명주실(명주 비단으로 만든 실타래)을 돌에 매달아 바닥을 재려 했으나 한 타래를 다 풀어도 끝이 닿지 않았다는 기록이 전해집니다. 현대 기술로는 그 깊이를 알기 때문인지 여름에는 안전요원도 배치되어있다고 합니다. 폭염에는 풍덩하고 계곡에 몸을 내던지고 싶은 충동이 들기 마련인데 호박소에서는 섣불리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호박소 주변 얕은 물에서 발만 담그고 있어도 시원할 정도이니 여름마다 생각나는 명소가 아닐 수가 없습니다. 


얼음골: 여름에 얼음이 얼고 냉기가 감도는 신기한 장소

얼음골은 밀양에서도 가장 많이 알려진 명소인데, 막상 "정말 얼음이 얼어 있냐"고 물으면 방문 시기에 따라 답이 엇갈립니다. 저는 여름에 방문했고, 얼음 자체보다 계곡 입구에서 올라오는 냉기에 더 놀랐습니다. 기온이 35도를 넘는 날이었는데도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소름이 돋을 만큼 서늘한 바람이 밀려왔습니다. 얼음골의 냉기를 설명하는 개념이 풍혈입니다. 풍혈이란 지형적 특성으로 인해 지하에서 냉기를 품은 공기가 올라오는 바위 틈새를 말하는데, 얼음골은 이 원리로 여름에 바위 틈새에 얼음이 어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재약산(천황산) 북쪽 사면에 자리 잡은 노천 계곡으로, 얼음이 어는 바위 틈새의 여름 평균 기온은 섭씨 0.2도, 계곡물 온도는 4~8도 수준입니다. 계곡물에 발을 담그면 2분 이상 버티기 어렵다고 하는데, 제가 직접 담가보니 1분도 안 돼서 발바닥이 뻐근해졌습니다. 보통 얼음이 어는 시기는 3월 초부터 7월 중순까지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맑고 더운 날일수록 얼음이 더 많이, 더 오래 유지된다는 점이 역설적입니다. 일반적으로 기온이 높으면 얼음이 녹는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풍혈 구조에서는 외부 기온이 높을수록 지하 냉기의 대류가 활성화되어 오히려 얼음이 더 잘 언다고 보는 시각이 있습니다. 다만 최근에는 이상기후로 인해 흐린 날이 늘면서 얼음을 볼 수 있는 기간이 예전보다 줄었다는 점은 감안해야 합니다. 얼음골의 신기한 역전 현상은 겨울에도 이어집니다. 겨울에는 반대로 바위 틈새에서 영상의 따뜻한 김이 올라와 계곡물이 잘 얼지 않고, 바위 주변으로 고사리와 이끼가 새파랗게 살아있습니다. 이 현상은 한국문화정보원을 비롯해 여러 기관에서도 자연과학적 관심 대상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제가 방문했을 때 특히 어린이 여행객들이 신기해하는 모습을 보니,  어른인 제 눈에도 신기한데 아이들 눈에는 오죽 신기했을까 싶어 아이들과 여행하는 중요성을 깨닫기도 했습니다. 


세 곳을 한 번에 다 보고 싶다면 백련사 주차장에 차를 두고 쇠점골 트레킹을 먼저 한 뒤, 돌아오는 길에 호박소를 들르고, 마지막으로 얼음골로 이동하는 순서가 동선 낭비가 없습니다. 저는 이 순서로 움직였는데 중간에 차를 다시 뺄 필요도 없었고 피로도도 적당했습니다. 여름 계곡 여행지를 찾는 분이라면, 이 세 곳은 각각 성격이 달라서 "하나만 가면 아깝다"는 생각이 드실 겁니다.



참고: https://korean.visitkorea.or.kr/detail/ms_detail.do?cotid=f1cddc52-780c-4438-9982-c6a255a44a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