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역사여행 (전일빌딩, 5·18민주광장, 민주묘지)
저는 광주에 가기 전까지 5·18민주화운동을 교과서 속 활자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꼭 한번쯤은 광주의 아픈역사를 돌아보는 테마의 여행을 해보고싶었습니다. 실제 역사의 그날이 담긴 전일빌딩245 10층에서 기둥에 박힌 탄흔을 손가락 한 마디 거리에서 바라보는 순간, 그 활자들이 전혀 다른 무게로 다가왔습니다. 광주 역사여행은 단순한 관광이 아닙니다. 자신이 지금 어떤 역사 위에 서 있는지를 몸으로 확인하는 시간입니다.
역사가 건물에 새겨지다. 전일빌딩245의 탄흔
광주 역사여행을 처음 계획할 때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전일빌딩245는 꼭 가야 해"입니다. 저도 처음엔 '박물관 같은 곳이겠지' 정도로 생각했는데, 막상 들어가니 예상과 완전히 달랐습니다. 건물 자체가 증거이고, 그 증거가 아직도 그 자리에 있다는 점에서 입니다. 전일빌딩245의 '245'는 단순한 숫자가 아닙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건물을 감식한 결과 확인된 탄환 흔적의 수입니다. 이 기관의 감식 보고서가 헬기 사격의 실체를 공식적으로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이후 2019년 추가 감식에서 25개가 더 발견되어 현재 총 270개의 탄흔이 건물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관람은 옥상 '전일마루'에서 시작해 아래로 내려오는 방식으로 이뤄집니다. 전망 덱에 서면 멀리 무등산이 보입니다. 1980년 5월 그 열흘 내내 그 자리에서 모든 걸 지켜봤을 산입니다. 개인적으로는 그 장면이 이날 여행에서 가장 조용하고 묵직한 순간이었습니다. 핵심 전시 공간은 9층과 10층에 운영 중인 '19800518' 전시관입니다. 10층에 들어서면 천장과 벽면을 가득 채운 두 작품이 먼저 맞이합니다. 그 다음 공간에 탄흔 원형 보존 구역이 있습니다. 국과수 보고서에 따르면, 탄환의 진행 방향이 수평 또는 하향이었고, 1980년 당시 주변에 10층 이상 건물이 없었다는 점에서 헬기 사격으로 결론 내렸습니다. 헬리콥터가 공중 한 지점에 정지한 채 제자리 비행하는 상태에서 UH-1H 기종 헬리콥터에 장착된 M60 기관총으로 시민들을 향해 사격했다는 것이 전시 내용의 핵심입니다. 기둥과 바닥에 선명하게 박힌 탄흔 앞에서 그 수치가 실감됩니다. 5·18민주화운동 기록물은 2011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이 등재를 계기로 인근에 5·18민주화운동기록관이 설립되었습니다. 기록관 1층 로비에는 계엄군의 총탄에 뚫린 옛 광주은행 본점의 실제 유리창이 원형 그대로 전시되어 있습니다. 유리에 난 구멍이 이렇게 작을 수 있다는 게 오히려 무섭게 느껴졌습니다.
탄흔 바깥의 이야기 — 5·18민주광장과 역사의 지층
전일빌딩245에서 나와 5·18민주광장으로 걷는 데 5분도 걸리지 않습니다. 광장 안쪽에 있는 원형 분수대가 보이는 순간, 사진과 영상에서 수없이 봤던 그 장소라는 걸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시위대가 자연스럽게 모여들었던 집결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사람들이 모인 자리가 바로 이 분수대 앞이었습니다. 광장에서 전일빌딩245를 바라보면 '민주의 종'이 설치된 종각 지붕 선 너머로 건물 외벽의 탄흔이 보입니다. 내부에서 탄흔을 가까이 보는 것도 충격이었지만, 저는 이 바깥에서의 시선이 오히려 더 오래 남았습니다. 공중 어딘가에 헬리콥터가 떠 있었고, 그 아래 분수대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는 장면이 머릿속에서 겹쳐졌기 때문입니다. 광장을 지나면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나옵니다. 문화정보원, 문화창조원, 어린이문화원, 민주평화교류원, 예술극장 등 다섯 개 공간으로 구성된 광주의 대표 문화 복합시설입니다. 아픔의 역사가 서린 자리에 문화의 공간이 들어선 것이 처음엔 어색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민주평화교류원이라는 이름을 보는 순간, 이 공간이 단절이 아닌 연속임을 이해하게 됩니다. 제가 실제로 다녀온 동선을 기준으로 추천 순서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5·18민주광장 원형 분수대에서 전일빌딩245 외벽 탄흔을 먼저 확인하세요. 맥락을 잡는 데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전일빌딩으로 들어가 옥상에서 시작해 9~10층 '19800518' 전시관 중심으로 관람하는데 정기해설(11:00, 13:00, 14:30, 16:00, 17:30)을 맞추면 훨씬 풍부하게 볼 수 있습니다. 걸어서 5분거리인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 가셔서 총탄에 뚫린 실제 유리창과 유네스코 등재 기록물을 확인하세요. 끝으로 차로 20분가야하는 거리이지만 국립5·18민주묘지에 시간여유를 가지고 방문하셔서 묘역과 추모탑까지 방문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광주 역사여행의 마지막 목적지 — 국립5·18민주묘지
국립5·18민주묘지는 시내 중심부에서 조금 떨어져 있어 별도 이동이 필요하지만, 이곳을 빠뜨리면 여행이 반쪽이 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5·18민주화운동의 희생자들이 잠든 공간이자, 민주 성지라는 표현이 전혀 과하지 않은 장소입니다. 묘역 중앙에 세워진 추모탑은 높이 40m의 사각기둥 형태로, 한국 전통 석조물인 당간지주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조형물입니다. 탑신 중앙에 설치된 타원형 형상은 새 생명의 부활을 상징하며, 빛의 각도에 따라 반사되는 모습이 달라집니다. 제가 방문한 날은 오후 햇살이 비스듬히 들어오는 시간이었는데, 그 빛이 탑신에 반사되는 장면이 오랫동안 눈에 남았습니다. 5·18 추모관은 단순한 전시 공간이 아닙니다. 민주화운동의 경과와 희생, 그리고 아직 밝혀지지 않은 진실들을 체험형 구성으로 풀어낸 공간입니다. 어린아이들의 영정사진 앞에서는 발걸음이 멈춰졌습니다. 1980년 5월에 목숨을 잃은 사람들 중에는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성인 시위대만 있었던 게 아니라는 사실을 이곳에서 다시 확인하게 됩니다. 묘역을 참배할 때는 복장에 주의가 필요합니다. 슬리퍼나 민소매 등 지나치게 가벼운 차림은 자제하는 것이 예의입니다. 이 부분은 공식 안내에도 명시되어 있고, 실제로 현장 분위기도 그렇습니다. 사소한 부분이지만, 이런 세심함이 장소에 대한 존중을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광주 역사여행이 막연하게 "무겁고 불편할 것 같다"고 느껴지는 분들이 있다면, 저는 오히려 반대 경험을 이야기해드리고 싶습니다. 무겁긴 하지만, 그 무게 끝에 뭔가 선명해지는 감각이 있습니다. 역사는 알고 나면 다르게 보이고, 현장은 알고 나면 더 다르게 느껴집니다. 전일빌딩245와 5·18민주광장, 국립5·18민주묘지를 묶어 하루나 이틀로 돌아보는 동선이라면, 그 감각을 충분히 경험할 수 있습니다. 가능하다면 전일빌딩245 정기해설 시간에 맞춰 방문하는 걸 추천합니다.
참고: https://korean.visitkorea.or.kr/detail/rem_detail.do?cotid=98941552-3cd2-4669-85b8-b4056ecb9b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