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청산도 슬로걷기 축제 (슬로시티, 슬로길, 여행비환급)
4월에 어디 갈지 고민하다가 그냥 무작정 배를 탄 적 있으신가요? 저는 올해 그렇게 청산도행 여객선에 올랐습니다. '슬로걷기 축제'라는 이름이 마음에 걸렸거든요. 걷기만 하는 축제가 진짜 축제가 될 수 있을지 반신반의했는데, 섬에 발을 딛는 순간부터 그 의심이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아시아 최초 슬로시티, 청산도는 어떤 섬인가
청산도는 전라남도 완도군 청산면에 속한 섬으로, 완도항에서 19km 거리에 있습니다. 섬 이름 그대로 물도 푸르고 산도 푸르다는 뜻의 '청산(靑山)'에서 비롯됐으며, 예부터 신선이 사는 땅이라 하여 '선산(仙山)' 혹은 '선원(仙源)'이라 불리기도 했습니다. 섬 중앙에는 해발 384m의 매봉산이 자리하고 있으며, 그 주변으로 대봉산과 보적산이 솟아 있어 섬 전체가 작은 산악 지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청산도는 2007년 12월, 아시아 최초로 슬로시티(Slowcity) 인증을 받았습니다. 슬로시티란 이탈리아어 '치타슬로(cittaslow)'에서 유래한 개념으로, 자연과 전통문화를 보전하면서 느림의 미학을 일상으로 실천하자는 국제적 운동입니다. 쉽게 말해 빠르게 개발하고 소비하는 도시 문명에 반기를 든, 속도를 줄이자는 선언 같은 것입니다. 청산도는 이후 2017년 국제슬로시티연맹으로부터 재인증을 받았으며, 인증 범위도 완도군 전역으로 확대되어 현재는 '슬로시티 완도'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현재 청산도는 다도해해상국립공원(출처: 국립공원공단 다도해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어, 섬의 자연 생태계와 경관이 체계적으로 보호받고 있습니다. 해안선 길이만 98.35km에 달하는 이 섬은, 이제 단순한 어촌이 아니라 전 세계 느림 여행자들이 주목하는 목적지가 되었습니다.
세계 슬로길 1호, 11코스를 직접 걸어보니
청산도 슬로길(Slow Road)은 11코스 17개 길, 총 42.195km로 이루어진 도보 여행 코스입니다. 2010년 문화체육관광부가 '이야기가 있는 생태탐방로'로 선정했고, 2011년에는 국제슬로시티연맹이 '세계 슬로길 1호'로 공식 지정했습니다. 세계 슬로길 1호란 슬로시티 운동의 가치를 가장 잘 구현한 도보 여행 코스에 부여하는 국제 인증으로, 청산도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닌 철학 있는 여행지임을 공인받은 셈입니다.
11코스 중 가장 유명한 건 1코스인 서편제길입니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 '서편제' 촬영지를 지나는 이 코스는 도청항 미항길에서 시작해 화랑포길까지 이어지는데, 걷다 보면 왜 이 섬을 배경으로 그 영화를 찍었는지 저절로 이해됩니다. 그런데 제가 실제로 걸으며 예상 밖이라고 느낀 건 2코스 사랑길이었습니다. 이름은 사랑길이라 낭만적으로 들리지만, 실제로는 숲과 해안 절벽을 잇는 코스라 경사가 상당합니다. 앞사람 뒤통수만 보며 한 줄로 걸어야 하는 구간이 제법 되고, 낭떠러지에 가까운 급경사도 있어서 이름과 실제 난이도 사이의 간극에 잠깐 멍해졌습니다.
실제로 걸어보고 나서 코스별로 느낀 특징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1코스 서편제길: 영화 촬영지를 품은 대표 코스. 완만한 편이라 처음 방문자에게 권장.
2코스 사랑길: 해안 절벽과 숲의 풍경은 압도적이지만 급경사 구간 다수. 트래킹화 필수.
3코스 고인돌길: 고인돌, 천산진성, 초분(草墳, 볏짚으로 시신을 덮는 전통 장례 방식)을 직접 볼 수 있는 역사 코스.
5코스 범바위길: 범바위 전설이 전해지는 코스로, 기(氣)치유 프로그램과 연계 가능.
7코스 돌담길: 상서리와 동촌리 두 마을을 잇는 코스로, 제주도와는 다른 결의 돌담 풍경이 인상적.
청산도 슬로걷기 축제, 어떻게 즐기는 게 맞을까
청산도 슬로걷기 축제는 2009년 '세계슬로우걷기축제'라는 이름으로 처음 시작된 우리나라 최초의 걷기 주제 축제입니다. 2010년부터 지금의 이름이 됐고, 2012년부터는 매년 4월 1일부터 4월 30일까지 한 달간 진행됩니다. 2024년 축제의 주제는 "치유가 필요해, 청산도를 걸어봐"였으며, 청산 완보 스탬프 투어, 범바위 기(氣)치유, 줍깅 챌린지, 청산도 이색 걷기 대회 등의 프로그램이 운영됐습니다.
청산 완보 스탬프 투어에서 '완보(完步)'란 청산도를 느리게, 웃으며 걷다 보면 어느새 11코스 전 구간을 완주하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11코스를 모두 돌아보고 스탬프를 완성한 사람 중 선착순 20명에게는 전복을 제공하고, 4코스 이상 걷은 참가자에게는 청산도 특산품을 줍니다. 걷는 게 목적인 여행자라면 처음부터 완주를 목표로 잡아볼 만합니다.
제가 특히 권하고 싶은 건 '별 볼 일 있는 청산도' 프로그램입니다. 매주 새벽 1시 30분부터 3시까지 은하수 감상 포토 투어가 진행되는데, 청산도는 빛 공해(Light Pollution, 인공 조명이 밤하늘 관측을 방해하는 현상)가 극히 적어 맨눈으로도 은하수를 볼 수 있는 수준의 어둠을 유지합니다. 이 프로그램은 카카오톡 채널 '청산도 여행'을 통해 사전 예약이 필요합니다. 새벽 한 시에 일어나는 게 쉬운 일은 아닌데, 그래서 더 권하고 싶습니다. 낮의 청산도와 완전히 다른 얼굴을 보여주거든요. 한편, 매주 금요일 저녁 6시 30분에는 서편제 촬영장 일대에서 문화관광해설사와 함께하는 달빛 나이트 워크도 운영됩니다. 이쪽은 새벽 프로그램에 부담을 느끼는 분들에게 맞는 선택지입니다.
여행비 환급 제도, 알고 가면 달라지는 것들
완도 여행을 준비하는 분들 중에는 "어차피 섬 여행인데 비용이 만만치 않겠지"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도 처음에 그렇게 생각했는데, 완도군 외 거주자를 대상으로 한 여행비 환급 제도를 알고 나서 계산이 달라졌습니다. 섬 내에서 사용한 식비, 숙박비, 교통비 등의 50%를 최대 10만 원까지 현금으로 돌려받을 수 있는 제도입니다. 여행경비 지원 제도(Travel Cost Subsidy)란 지자체가 관광 활성화를 위해 방문객의 실 지출 일부를 사후 환급하는 정책으로, 완도군은 이를 통해 섬 관광의 접근성을 높이고 있습니다.
이 제도를 실제로 이용해보니 몇 가지 주의사항이 체감됩니다. 여행 최소 3일 전까지 홈페이지나 앱을 통해 사전 신청을 마쳐야 하고, 여행 중에는 카드 영수증이나 현금영수증을 빠짐없이 챙겨야 합니다. 여행 종료 후 온라인 청구를 하면 심사를 거쳐 입금이 됩니다. 당일치기도 환급 대상에는 포함되지만, 10만 원 한도를 채우려면 하루 안에 20만 원어치를 써야 한다는 계산이 나와서 1박 2일 일정이 현실적입니다.
사전에 챙겨야 할 준비물도 정리해 두면 편합니다. 완도군 관광 정보와 사전 예약은 완도군 공식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복장: 유채꽃밭 인생샷을 원한다면 흰색이나 밝은 아이보리 계열 옷을 추천합니다. 노란 꽃과 대비가 잘 됩니다.
신발: 트래킹화 또는 발목 지지력이 있는 운동화. 일반 운동화는 2코스 이상에서 위험할 수 있습니다.
방풍: 4월 청산도는 바닷바람이 생각보다 강합니다. 가벼운 바람막이 하나는 필수입니다.
여객터미널 근처에 있는 느림의 종을 치고 슬로걷기를 시작해야 진정한 슬로시티 여행을 했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서두르지 않고 종소리 한 번에 마음 박자를 맞추는 것, 그게 이 섬 여행의 출발점이라고 봅니다.
참고: 대한민국 구석구석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