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릉숲 (100년수목원, 수목원 산책, 탐방제한)

예상 밖이었습니다. 서울 한복판, 지하철역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이런 숲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요. 올해로 산림 분야 연구를 시작한 지 딱 100년이 된 홍릉숲, 직접 다녀온 뒤 가을 단풍과 역사가 함께 숨 쉬는 이 공간이 왜 서울 시민에게 반드시 한 번은 와봐야 할 곳인지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100년 수목원, 그 뿌리를 알면 더 깊게 보인다


홍릉숲이라는 이름이 어디서 왔는지 아시나요? 을미사변으로 희생된 명성황후의 능호가 '홍릉(洪陵)'이었고, 바로 이곳 동대문구 회기로 57번지에 그 묘소가 있었습니다. 1919년 고종 황제가 승하하면서 능을 경기도 남양주로 이장해 합장이 이뤄졌고, 그 빈 터에 1922년 임업시험장이 들어서면서 우리나라 최초의 수목원이 탄생했습니다.

행정 명칭은 국립산림과학원이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홍릉숲 혹은 홍릉수목원이라 부릅니다. 천장산 자락에 자리한 44만㎡ 규모의 이 숲에는 2,000여 종, 20만여 본의 식물이 보존·관리되고 있습니다. 목본이란 줄기가 나무처럼 굳어지는 식물, 초본이란 줄기가 풀처럼 연한 식물을 뜻합니다. 이 두 카테고리를 합쳐 이 규모를 유지하는 수목원은 서울 시내에 흔치 않습니다.

정문을 들어서자마자 눈에 들어온 문구가 있었습니다. '숲과 함께 한, 국민과 함께 할 100년'.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의 수난 속에서도 꺾이지 않고 이어온 100년이라는 무게가 그 짧은 문장 안에 전부 담겨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단순한 공원 산책이 아니라, 역사 한 페이지를 걷는 기분이랄까요.

숲 안쪽, 본관 오른편 산자락을 오르면 실제 홍릉터가 남아 있습니다. 소나무 한 그루만 쓸쓸히 자리를 지키는 그 터에 서면 말이 없어집니다. 가까운 곳에는 고종황제가 황후의 묘를 찾아와 목을 축였다는 어정(御井), 즉 임금이 사용하던 우물도 남아 있습니다. 역사 이야기를 알고 걸으면 단풍보다 이 공간이 더 깊이 들어옵니다.


수목원 산책, 어떤 나무가 기다리고 있을까


홍릉숲을 한 바퀴 돌다 보면 침엽수원, 활엽수원, 초본원, 관목원, 약초원, 조경수원 등 구역이 나뉘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침엽수원이란 잎이 바늘처럼 가는 나무들을 모아 둔 구역이고, 활엽수원이란 넓은 잎을 가진 나무들이 중심인 구역입니다. 두 구역의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서, 같은 숲 안에서도 전혀 다른 공기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침엽수원에서는 피톤치드의 대명사로 알려진 편백나무를 만날 수 있습니다. 화백나무, 삼나무, 잣나무, 백송, 구상나무, 전나무까지 줄지어 있는 이 구역은 코끝이 싸하도록 공기가 다릅니다. 제가 직접 걸어봤는데, 30분도 안 돼서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 왜 오는지 바로 이해했습니다.

산림보전연구동 앞 잔디밭에는 홍릉숲을 상징하는 나무가 홀로 서 있습니다. 반송이라는 소나무 품종인데, 생김새가 쟁반처럼 넓고 낮게 퍼진다 해서 붙은 이름입니다. 1892년에 심었으니 올해 수령이 130살입니다. 이 반송은 명성황후가 이 땅에 묻히기도 전부터 뿌리를 내리고 있었던 셈입니다. 그 나무 앞에 서니 괜히 경건해졌습니다.

국립산림과학원에서 직접 관리하는 숲답게, 모든 나무와 꽃마다 품종 팻말이 달려 있습니다. 제가 다녀온 날 기준으로 꽃봉오리가 막 올라오는 나무들도 눈에 띄었는데, 이름표 덕분에 '아, 이게 이런 나무구나'를 하나하나 확인하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방문하면 식물 교육 효과가 정말 클 것 같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홍릉숲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침엽수원 — 편백, 구상나무, 백송 등 희귀 수종을 한 번에 만날 수 있는 구역으로 피톤치드 효과가 가장 강하게 느껴집니다.

반송 — 수령 130년, 홍릉숲 최장수 나무. 산림보전연구동 앞 잔디밭에 단독으로 서 있어 눈에 잘 띕니다.

왕벚나무 쉼터 — 봄 꽃, 여름 그늘, 가을 낙엽 모두 시즌마다 다른 풍경이 펼쳐지는 포토 스팟입니다.

홍릉터 — 명성황후가 22년간 잠들었던 빈 터와 고종의 어정이 남아 있어 역사적 의미가 깊습니다.

조경수원 — 숲 가장 높은 지대에 위치해 바람에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걸을 수 있는 구역입니다.


방문 전 꼭 확인해야 할 것들 — 주차, 개방 시간, 탐방제한

가기 전에 한 가지만 물어볼게요. 혹시 차 갖고 가시려는 분 계신가요? 저도 그 고민을 했다가 포기했습니다. 홍릉숲 주변에는 공영 주차장이 따로 없습니다. 주말에는 인근 세종대왕기념관 웨딩홀이나 영휘원 쪽에 주차가 가능하기는 한데, 자리가 있어야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주변이 공공기관 밀집 지역이라 평일 주차도 쉽지 않습니다. 결론적으로 대중교통 이용을 강력히 권합니다. 6호선 고려대역 3번 출구에서 걸어서 5분이면 정문입니다.

운영 시간도 미리 확인해두는 게 좋습니다. 홍릉숲은 월요일에 휴무이고, 하절기(3~10월)에는 주말 자유관람이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동절기(11~2월)에는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운영됩니다. 평일에는 어린이·학생 등 단체를 대상으로 숲해설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입장료는 무료입니다. 

단, 평일 자유관람이 가능해진 것은 반가운 소식이지만 그와 함께 탐방제한구역이 생겼다는 점은 솔직히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홍릉숲은 단순한 공원이 아니라 산림과학 연구를 위한 시험림입니다. 산책로 곳곳에서 소나무숲 물순환 모니터링 시설, 도토리 생산량 모니터링 장치, 도시화와 박새 번식 영향 모니터링 설비 같은 연구 장비들과 마주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숲 자체가 살아 있는 실험실인 셈이죠.

제가 꼭 보고 싶었던 함박꽃나무가 탐방제한구역 안에 들어가 있어 올해도 꽃을 못 봤습니다. 작년에도 못 봤는데 올해는 보겠다고 벼르고 있었거든요. 속상한 건 속상한 거지만, 연구 시설 보호를 위한 결정이라는 걸 알기에 억지로 이해는 했습니다. 다만 이 부분은 방문 전에 미리 알고 가셔야 기대와 다른 상황에 실망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탐방제한구역이 생겼다는 사실, 더 많이 열어주면 더 많이 훼손되는 구조, 그게 현실입니다. 홍릉숲 주변으로 영휘원(고종황제의 후궁 순헌황귀비의 능)을 포함한 역사 유적들이 이어져 있는데, 이 공간들이 계속 아름다울 수 있으려면 방문객 한 사람 한 사람의 태도가 달라져야 합니다.


참고: https://mediahub.seoul.go.kr/archives/2006072